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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문장을 비트는 서술어 '전망이다'

    지난 호에 이어 우리말 문장을 왜곡하는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관형어를 많이 쓰면 필연적으로 명사구 남발로 이어지고, 이는 문장의 리듬을 깨고 글을 허술하게 만든다. 부사어를 살려 쓰면 동사·형용사가 활성화돼 문장의 구색이 갖춰지고 글에 운율이 생긴다. 짜임새 있는 문장은 그 자체로 힘 있고 매끄럽다. 주어와 서술어 호응하지 않아 비문관형어를 남발하는 현상은 다양하게 발생한다. 다음 문장을 비교해보자.①그는 내일 떠날 ‘계획이다’. ②그는 내일 떠날 ‘전망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명사문인데, 두 문장은 비문 여부의 판단이 좀 다르다. ①은 서술어가 주어의 동작,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동사문으로 바꾸면 ‘그는 내일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다’로, 이게 기저문장이다. 그에 비해 문장 ②의 서술어 ‘전망이다’는 주어 ‘그’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①과 같이 ‘그는 내일 떠나려고 전망하고 있다’로 해선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다. ‘전망’의 주체는 제3의 누군가로 인식되는데, ‘그’가 주어인 문장에서 서술어로 행세하고 있으니 마치 머리 따로 꼬리 따로인 셈이다. 비문에 지나지 않는다.이런 오류는 글쓰기에서 흔히 일어난다. ‘수출이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아파트 분양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물가가 오를 전망이다’, ‘대북 관계가 악화될 전망이다’ 등이 모두 바른 표현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이다’ 부분을 ‘~ㄹ 것으로 보인다’, ‘~ㄹ 것으로 전망된다’, ‘~ㄹ 것으로 예상된다’처럼 피동형으로 바꿔 동사문으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이라고?

    2018년 11월 나온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저출산 극복이 사회적 현안이 된 지 오래된 터라 신문들은 그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다. 수많은 관련 기사 가운데 <국민의 절반 이상 ‘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혹시 이런 문장을 보면서 아무 이상을 느끼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필수 아닌 선택’은 무슨 뜻일까? 이게 어색하게 보였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라’를 써야 할 데에 ‘아닌’ 남발‘무엇(이) 아니라 무엇’ 또는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쓰던 말이었다. 이 표현이 요즘은 ‘무엇 아닌 무엇’으로 쓰인다. 이른바 우리말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사어의 관형어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어법의 변화로 봐야 할까, 아니면 단순히 잘못된 글쓰기 습관 탓으로 돌려야 할까.글쓰기에서 관형어 남발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니라’와 ‘아닌’의 관계는 그런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부사어를 써야 할 곳에 습관적으로 관형어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아 모국어 화자들이 더 이상 어색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다. 예를 들어보자. “전북 익산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유턴 기업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국내가 아닌 해외’가 됐을까? 이런 표현은 정통 어법에 익숙한 사람에겐 낯설다. ‘해외’를 강조하려다 보니 ‘국내가 아닌’을 수식어로 덧붙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국내가 아닌 해외’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적어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라고 써야 한다. 그게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문법&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정치인 출신의 홍길동'이 어색한 까닭

    《혈의 누》는 1906년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다. 이인직이 ‘만세보’ 주필로 있으면서 연재한 소설인데, 원래 제목은 ‘혈의루’였다. 당시만 해도 한글 맞춤법은 개념도 없었고 띄어쓰기도 잘 몰랐다. 말의 구조는 더 이상하다. ‘혈(血)의 루(淚)’라고? ‘피의 눈물’이란 뜻인데 우리말은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한자어로 한다면 ‘혈루’이고, 순우리말로 하면 ‘피눈물’이다. 그게 우리말다운 표현이다. ‘정치인 출신인 홍길동’이 좋은 표현우리말은 명사로 연결된다. 명사가 잇따를 때 많은 경우 중간에 관형격 조사 ‘-의’를 넣지 않는다. ‘우리의 소원’이 아니라 ‘우리 소원’이고, ‘실력의 향상’이 아니라 ‘실력 향상’이라고 한다. 작은 차이지만 그게 간결하고 자연스럽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가 아니라 ‘회사 발전을 위해~’ 식으로 말하고 쓰는 게 좋다. 그럴 때 문장성분 간의 연결이 더 긴밀하고 글의 흐름도 빨라진다.한때 ‘나의 생각’이나 ‘우리의 소원’ 같은 것을 일본어투니 한문 번역투니 해서 쓰지 말자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시절 우리말 진흥을 위해 그런 지적이 필요한 적이 있었고, 실제로 이는 우리 말글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요즘은 이런 주장에서 조금은 자유스러울 정도는 된 것 같다. 그만큼 우리말에 대한 인식도 커졌고 우리말 자체도 많이 발전했다는 뜻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우리말을 건강하게 과학적으로, 경쟁력 있는 언어로 육성하기 위해 ‘-의’ 사용을 줄이자는 데 있다. 이는 우리말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부사어를 쓰면 문장에 리듬이 생기죠

    전국 곳곳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지난 4월 7일은 제65회 ‘신문의 날’이기도 했다. 구한말 기울어가는 국운 속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탄생했다. 그날이 1896년 4월 7일이다. 언론인들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문의 날은 이날을 기념해 제정됐다. 명사 많이 쓰면 ‘압축성’ 좋아도 ‘서술성’ 떨어져독립신문은 한국 언론사(史)에서 국어사적으로도 큰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 신문 최초로 한글로만 쓰고, 띄어쓰기를 도입했다는 점에서다. 창간 사설에서 한글로만 쓰는 이유를 “상하귀천이 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로, 띄어쓰기는 “누구나 말을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신문의 ‘알기 쉽게 쓰기’ 정신은 120여 년이 지난 요즘 글쓰기에도 유효하다.첨가어인 우리말은 조사나 어미 변화로 문장 성분을 만들고 운율도 준다. 그러면서도 조사나 어미를 떼어내고 명사만으로도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 글자 수를 줄이면서 개념만으로 의미 표현을 할 수 있으므로 압축 효과도 기대된다. 그래서인지 글쓰기에서 명사(또는 명사구) 사용의 유혹은 끊임없이 일어난다.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주가가 1년 전에 비해 2배로 올랐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문장은 명사를 사용해 다음같이 줄일 수 있다. “정부, 사태 심각 인식.” “주가, 1년 새 2배 상승.” 이 같은 명사 나열체는 그 자체로 ‘의미의 압축성’과 우리말 특성인 ‘서술성 확보’ 간 역(逆)관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일반적인 글쓰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의'나 '~부터' 함부로 쓰면 글이 어색해져요

    집 근처 한 가게 앞에 내걸린 안내 문구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OO생협 매장의 오픈시간은 10시부터입니다.’ 우리말이긴 한데 우리말답지 않다. 어찌 보면 흔한 표현인 듯하지만, 우리말을 비틀어 써서 어색해졌다. 이런 이상한 말들을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명사구 남발하면 문장 흐름 어색해져이 말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눈에 띈다. 우선 단어 사용이 어색하다. ‘오픈시간’이 ‘10시부터’라고 한다. 문 여는 시간이 10시면 10시지, 10시부터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심코 이 ‘부터’라는 조사를 남용한다. “오후 2시부터 학급회의가 열린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짜는 10일부터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OO회장에 취임했다.” 이런 데 쓰인 ‘부터’는 다 어색하다. 오후 2시에 학급회의가 열리는 것이고, 10일 학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회장에 취임한 것 역시 지난해 말이다. 여기에 ‘부터’가 붙을 이유가 없다.외래어 남발도 거슬린다. 가게를 연다고 할 때 ‘오픈’을 너무 많이 쓴다. 문을 여는 것도 오픈이고, 행사를 시작하는 것도 오픈이다. 가게를 새로 내는 것도 오픈이라고 한다. 하도 많이 쓰여 거의 우리말을 잡아먹을 정도다. 상황에 따라 ‘열다, 시작하다, 선보이다, 생기다, 차리다, 마련하다, 막을 올리다’ 등 섬세하고 다양하게 쓸 우리말 어휘가 얼마든지 있다.문장 구성상의 오류도 간과할 수 없다. ‘관형어+명사’ 구조의 함정에 빠졌다. ‘매장의 오픈시간’은 매우 어색한 구성이다. ‘오픈시간’을 주어로 잡아 그렇게 됐다. 가게가 주체이므로 ‘매장’을 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때문이다'를 남발하면 글이 허술해져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글쓰기는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워주는 훌륭한 도구다. 바꿔 말하면 모든 글은 논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사고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글쓰기에서 이런 과정은 어휘 선택에서부터 문장 구성, 문장들의 전개 과정 등 하위요소들을 통해 드러난다.인과관계 따져 엄격히 써야 효과적그중에서도 대놓고 이 논리성을 요구하는 게 있다. 인과관계 표현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게 ‘때문이다’ 구문이다. ‘탓이다/덕분이다/여서다’ 같은 서술 용법도 같은 범주에 있는 말들이다. ‘덕분’(긍정 의미)과 ‘탓’(부정 의미)의 쓰임새를 달리 하는 것은 어휘적 차원에서의 구별이다. 문장론적 차원에서는 문장의 구성과 전개 과정에서 인과관계 구문의 성립 여부를 살펴야 한다. 이들을 자칫 남발하다 보면 글의 흐름을 어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보자.“국내 기업의 ‘탈(脫)한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높은 인건비로 투자 매력이 떨어진 한국을 떠나 해외에 둥지를 트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찬찬히 읽다 보면 ‘늘고 있기 때문이다’에서 글의 흐름이 걸릴 것이다. ‘때문이다’는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나타내는 말이다. 앞에서 ‘탈한국 가속화’를 언급했으면 뒤에 그 원인이나 배경이 나와야 자연스럽다. ‘해외에 둥지를 트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은 ‘탈한국 가속화’를 달리 표현한 것일 뿐 같은 얘기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한 것이다. 서술어를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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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다'를 남발하는 글은 잘못된 거죠

    “경직된 플레이가 나오기도 했지만 선수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잘해준 거 같다.” 2018 아시안게임에서 선동렬 야구 국가대표 감독이 우승한 뒤 한 말이다. 선수들에게 우승의 공을 돌렸다. 그런데 끝말이 자꾸 귀에 거슬린다. 잘했으면 잘한 것이지 ‘잘한 거 같다’는 무슨 뜻일까?느낌 나타내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벌집 쑤신 것 같다’란 말이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느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란 말도 많이 쓴다. 다 괜찮은 표현들이다. 그런데 ‘엄청 좋은 것 같다’느니, ‘기쁜 것 같다’ ‘슬픈 것 같다’ 따위는 매우 어색하다.‘같다’는 10여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는 것’ ‘-을 것’ 뒤에 쓰여 추측, 불확실한 단정의 뜻을 나타내는 용법이다. ‘사고가 난 것 같다/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처럼 쓰는 게 전형적인 용법이다. 이 말은 또 ‘그렇게 느껴지는 바가 있음’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날씨가 좋아 고기가 잘 낚일 것 같아” 등이 그런 것이다.‘같다’는 확실치 않을 때, 자신 없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래서 입말에서도 공식적 대화에서는 쓰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수사학적으로는 완곡어법의 하나로 사용된다. 하지만 요즘 글쓰기에 보이는 ‘~인 것 같다/같아요’ 표현은 그런 것과도 상관이 없다. 그저 잘못 익힌 말투가 글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예쁜 거 같아요, 아픈 거 같아요, 화나는 거 같아요, 맛있는 거 같아요.’ 느낌을 나타내는 감정어는 ‘같다’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다 강세부사 ‘너무&r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2) '가지다'를 다른 말로 바꿔 보자

    문장을 쓰는 방식은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계열체와 통합체의 조합이다. 계열체란 간단히 말하면 단어를 찾는 일이다. 최적의 단어를 찾아 써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통합체란 그런 단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 뒤에는 ‘맛있다, 썩다, 떨어지다, 시다, 붉다…’ 등의 말이 올 수 있다. 모국어 화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사과’ 뒤에 ‘잘’이라는 부사가 왔다면 이어지는 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익다’나 ‘먹다’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돼 매끄럽게 연결된 것을 통합체라고 한다.‘가지다’라는 함정을 피해야우리가 글을 이해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단어의 뜻을 파악해서 아는 것보다 주로 통합체상의 맥락을 통해 이뤄진다. 어떤 말 뒤에 뭐가 올지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단어들 간에 서로 어울리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합 체계가 단단할수록 언어의 생태계는 건강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말 체계를 위협하는 말 ‘가지다’를 살펴보자.‘그는 지난 3일 모교인 OO대를 찾아 후배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이날 대학 본관 200호 강의실서 가진 특강엔….’언제부터인지 ‘~기회를 가지다’란 문구가 우리말에서 상투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은 잘 들여다보면 매우 어색하다.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보다 ‘만남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이를 ‘(후배들과)만났다’고 하면 더 좋다. 훨씬 간결해진다. 이어지는 ‘~에서 가진 특강’도 ‘~에서 한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