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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조선시대 마을마다 글 읽는 소리 낭자하고…양반 문중마을로 숨는 사람 늘어난 까닭은

    조선시대 평민에게 군포(軍布)를 징수하기 시작한 것은 1626년이다.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를 돕기 위해 용병을 모집했는데, 이 비용을 충당하고자 군포제를 시행했다. 문제는 이때 인조가 양반층엔 군역을 면제해주고 평민에게만 군역 면제 대가로 포(布)를 받았다는 데 있다. 조선 초에는 양역(良役)이라 하여 원칙적으론 양인을 대상으로 군역이 부과됐고, 양반가의 자제라 해도 군역을 지게 했지만 이제 양반들은 이 같은 속박에서 합법적으로 벗어나게 됐다. 이념상 임금과 백성의 관계는 계급적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관계로 상정돼 조세가 최대한 공정하고 가벼워야 한다는 ‘겉치레’마저 사라져버렸다.인조는 이 같은 세금 면제 정책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1626년 일반인과 양반층을 구별하는 새로운 호적을 마련했고, 이에 따른 호패를 발급했다. 후금과의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정부가 새로운 호적을 작성하자 조금이라도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군역을 피하려고 모두 (양반 대우를 받고자) 향교나 서원에 입학했다. 조상을 위조하는 환부역조(換父易祖) 등으로 양반을 칭하면서 군역 부담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재물을 관가에 바치거나 벼슬을 사고, 의원 역관 화원의 신분으로 지방의 수령을 얻거나 족보를 위조해 양반 행세를 하는 부류가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군역을 질 젊은이들이 모두 ‘국방과 조세의 의무’를 행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유학생으로 자처하고자 소리 높여 글을 읽으니 ‘전국에 글 읽는 소리가 낭자했다’고 전해진다.이제 병역 의무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만 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들이 피해간 세금은 힘없는 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