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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타

    나폴레옹은 처음부터 '전쟁 배당금' 노렸다

    대체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 것일까. 사람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동일한 행위를 할 때, 이유는 하나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발상이긴 하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피눈물을 흘려놓고도 호모사피엔스가 여전히 전쟁을 끊지 못하는 것은 그것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인간 세상에서 평화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며, 오히려 전쟁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물론 영구 평화라는 자신의 주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사였겠지만, 허위로 세상을 진단할 분이 아니라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분이 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 철학서인 <전쟁론>을 집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유혈을 꺼리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에 의해 반드시 정복당하며,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연속”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는 “왜”라는 물음에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답을 하기가, 진실을 말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책 속에 암호처럼 숨겨놓은 정답은 ‘개인적인 의지’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정치가와 군인들의 의지가 클라우제비츠가 간파한 전쟁의 이유였다. 이처럼 철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전쟁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전쟁을 설명하는 것은 허무할 정도로 쉽다. 거기에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이 통상적인 경제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수준을 월등하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에서 이겼을 경우다. 지면 즐거움을 상대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 즐거움 중의 하나가 물질적·신체적인 약탈이다. 고대와 중세의 전쟁에서 약탈은 승

  • 역사 기타

    西進 칭기즈칸, 육상 무역 독점국부터 쳤다

    헤로도토스는 부드러운 나라에서는 부드러운 남자들이 태어나는 법이어서 풍요로운 곡식과 용감한 전사들이 같은 땅에서 태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파봐야 힘만 빠지는 땅과 씹을수록 허탈해지는 음식과 인간의 생존에 적대적인 기후에서 자란, 악에 받친 남자들이 전쟁에 강하다는 얘기겠다.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제공해 남자들을 구조적으로 전사(戰士)로 만드는 땅이 있으니 바로 몽골이다. 흔히 몽골 ‘초원’이라고 한다. 몽골의 초원은 푸르고 그림 같은 집이 있는 곳이 아니라 거지 같은 천막에다 나를 죽이려 드는 인간들만 득실대는 곳이다. 몽골어로 ‘강(gan)’이라 불리는 가뭄 때문에 초원의 풀은 늦여름부터 마르기 시작한다. 가축들이 굶어 빼빼해질 무렵, 이번에는 주드(dzud)라는 겨울 재해가 찾아온다. 우리는 섭씨 영하 10℃만 돼도 강추위라고 부르지만, 몽골의 추위는 평균 영하 35℃, 심할 경우 50℃까지 내려간다. 허기진 양들은 흙과 돌을 먹는다. 양들의 젖이 마르면 인간도 덩달아 굶어야 한다. 벌레와 쥐를 잡아먹으며 버티면 그때야 겨우 봄이 온다. 이런 곳이 이른바 몽골 초원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생존 원정을 떠날 법도 한데, 이들은 내내 그 생활을 반복한다. 수많은 부족으로 쪼개져 있다 보니 군사력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약탈하고 죽이는 동안 서로에게 원한이 쌓여 더더욱 뭉치지 못하는 게 유목민족의 굴레다. 이때 등장한 루키가 칭기즈칸(어린 시절 이름은 ‘좋은 쇠’라는 뜻의 테무친)이다. 중급 부족장의 아들이던 칭기즈칸은 10대 초반 아버지를 잃는다. 독살로 리더가 사라지자 부족 구성원 대부분은 제 살길을 찾아 떠나고, 마을에는 여성

  • 역사 기타

    동맹들에 "지켜줄테니 세금 내라" 겁박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풀꽃만 그런 게 아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에게 그리스가 그랬다. 동쪽으로는 중국과 인도의 접경, 남쪽으로는 이집트,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차지한 땅 부자 페르시아에 영토 같은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지중해 무역을 위해 제국의 서쪽 연안 이오니아만 손에 넣으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다리우스는 전면적인 전쟁 대신 이오니아의 폴리스들을 하나씩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선택한다. 페르시아의 황금은 언제나처럼 유능했다. 재물이 흘러 들어가자 이오니아 폴리스는 분열했고 곳곳에서 친(親)페르시아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어디에나 삐딱선은 있다. 불필요한 종족주의로 충만한 밀레투스를 중심으로 반(反)페르시아 반란이 일어난다. 자신들이 세운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참교육을 하는 것은 제국의 기본 업무 아니던가. 페르시아의 창칼 아래 600년 역사의 밀레투스는 폐허로 변했고 시민들은 모조리 노예 신세가 된다. 사람이 하나를 얻으면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사실 다리우스는 그리스라는 나라를 잘 몰랐다. 장군들과 회의하는 자리에서 그리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게 어디 있는 나라인가?”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런데 차지하고 보니 예뻤다. 그리스 본토에도 흥미가 생겼고 게다가 미운 폴리스가 있었다. 밀레투스가 페르시아에 대들 당시 지원군을 보냈던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다. 탐도 나고 괘씸하기도 해서 다리우스는 아테네 정벌을 결심한다. 물론 전쟁 안 하고 협박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면 최고다. 기원전 491년 페르시아는 그리스 본토의 도시국가에 사절단을 보낸다. 항복의 의미로 흙과 물을 보내라고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농민 수만 늘린 18세기 중국 토지 상속제도…산업화 늦추고…농촌에 '가난 족쇄' 채워

    전통시대 중국 농촌사회에선 여아 살해 관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갓 태어난 여아들을 말 그대로 접시 물에 코를 박도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구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이 적었다.사회에서 여성이 줄어든 피해는 고스란히 빈곤층 농촌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부유한 지주와 상류층은 첩까지 두고 살았지만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밖에 없었던 가난한 농촌 총각들에겐 장가 갈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던 것이다. 한마디로 혼인 적령기의 여성들은 이들 반(半) 프롤레타리아에게까지 차례가 돌아가지 않았다.그 결과 농촌 총각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2세를 재생산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하지만 중국 농촌사회에서 밑바닥을 차지하는 농촌 프롤레타리아 계층은 줄어들기는커녕 아무런 문제 없이 지속적으로 공급됐다. 이는 그들보다 나은 조건에 있던 사람들이 계속 하향 이동하면서 그들의 빈자리를 채웠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된 원인으로 필립 황을 비롯한 일군의 역사학자들은 인류학 연구에서 차용한 ‘인볼루션(invoiution)’이란 개념을 내세운다. ‘내권화(內捲化)’라는 용어로 번역되는 인볼루션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화하는 현상을 말한다.18세기까지 전통시대 중국은 농촌 가내수공업이 상당한 발전을 거두면서 유럽 못지않은 경제적 융성을 누렸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인 공장제 산업화로는 도약하지 못했다. 원시산업화 수준에서 멈춰선 채 그 자리를 맴맴 돌았던 것이다.넘쳐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한 싼 노동력을 통해 인구당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 아니라 토지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향상하는 길을 모색했다. 강력한 인구압(人口壓)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넘사벽'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할 수 없는 것은

    옛 소련의 프로 체스선수 가리 키모비치 카스파로프는 1985년 세계 챔피언에 올라 2000년까지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런 카스파로프에게 1989년 도전자가 나타났다. 도전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국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소트’였다. 그러나 카스파로프가 두 판을 모두 이겼다. 기계가 인간 영역인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기 어렵다는 게 세상의 반응이었다. IBM은 7년이 흐른 1996년 ‘딥블루’로 다시 도전해왔다. 여섯 판을 겨뤄 3승2무1패로 카스파로프가 또 이겼다. 그러나 이듬해 5월, 재대결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빚어졌다. 카스파로프가 1승3무2패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후 몇 차례 대결에서 기계가 계속 이기자 ‘인간 대 기계’의 체스 대결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한동안 잊혔던 ‘생각하는 기계’가 2011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슈퍼컴퓨터 ‘왓슨’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 두 명과 겨룬 것이다. 왓슨은 사람이 말하는 자연어의 소리와 의미를 이해했고, 단어의 뉘앙스까지 정확히 파악해 여유 있게 우승했다.2016년 3월 또 한 번 세기의 대결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바둑이었다. 결과는 인공지능(AI)의 승리였다. 구글이 6억달러에 사들인 영국 벤처기업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압도했다. 이제 기계가 넘보지 못할 인간의 영역은 없고,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의 삶은 어떨까? 온갖 비관적인 질문과 잿빛 전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의사가 된 왓슨, 암 진단

  • 경제 기타

    자본주의는 더 나아지는 삶을 위한 세상 원리

    '우물 안 개구리'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말이다. 세상의 넓은 형편을 모르고 우물 안에만 있어 그게 전부인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우물 안 개구리를 응용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 우물 속 개구리가 탈출하고 싶어서 우물 안에 고인 우유를 끊임없이 밟고 점프했고, 마침내 우유는 응고돼 버터가 됐다. 개구리가 그것을 밟고 결국 탈출한다는 이야기다. 개구리는 왜 그렇게 탈출하고 싶어 했을까? 아마도 '자유'를 갈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우물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유가 없는 세상은 이렇게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감옥 같은 세상이다.  개인의 자유 확장이 삶을 풍요롭게 해인류 문명은 점차 개인의 자유를 확장시켜왔다. 그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은 더욱 확장됐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우물 안에 가두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우물 밖으로 나와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게 한다. 우물 안에서 탈출한 개구리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자유로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멋지게 살아갔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우물 안에서 고통받았던 것을 생각하며 자신처럼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로 자유를 찾아 망명하고 이민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자유가 보장되는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정의로운 것이다.모든 꽃향기가 그렇지만 특히 장미꽃 향기에는 사람의 호르몬을 자극하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장미꽃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이 때문에 장미꽃을 선물하면서 프러포즈를 많이 하는 것이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14세기 유럽을 휩쓸고 간 페스트…동서 교역로를 통해 공포가 퍼져나갔다

    《데카메론》은 14세기 중반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던 시기에 탄생했다. 1346년 흑해 크림반도 카파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불과 5~6년 만에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보카치오는 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데카메론》 첫머리에 ‘1348년 3~7월의 5개월간 피렌체에서만 인구의 절반이 넘는 10만 명이 죽어나갔다’고 다소 과장해 썼다.페스트는 본래 중국의 오지, 중앙아시아 등의 풍토병이었다. 페스트균을 지닌 검은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을 매개로 전염된다. 14세기 중반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1330년대 초, 중국에서 돌기 시작해 서쪽으로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페스트가 발생한 중국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줄어들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이는 몽골이 지배한 원나라가 몰락한 요인 중 하나다. 동서 교역로로 전파된 페스트당시 유럽에서는 페스트로 3~4명 중 1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전쟁보다 훨씬 높은 사망률이다. ‘걸리면 죽는다’는 공포심이 수많은 괴담을 생산했다. 대표적인 것이 페스트가 몽골의 생화학 무기였다는 속설이다. 몽골계 킵차크한국 군대가 1347년 흑해 연안 크림반도의 카파를 공격할 때,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투석기로 성안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흑해 연안 일대에는 이미 페스트가 퍼져 있었고, 카파도 그 영향 아래 있었다. 다만 카파에 있던 상인들이 각 나라로 귀국하면서 더 빨리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대역병이 유럽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데는 그럴 만한 조건이 구비돼 있었기 때문이다. 세균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페스트가 유행한 원인을 농업과 도시화, 교역 활성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