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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 이슈 찬반토론

    '익명'을 악용한 무분별한 악플은 인터넷문화 해치죠

    [사설] 1억 배상판결난 악성 댓글…자율정화 없이는 '인터넷 자유'도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거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반복해 쓴 네티즌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다. ‘사이버 테러’ 격인 ‘악플’을 법원도 무시 못 할 범죄로 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특정인을 겨냥한 인터넷의 악성 댓글은 대면의 언어폭력 못지않은 공격이다. 익명 공간이 넘치는 현대사회의 사회...

  • 경제 기타

    자유로운 무역을 막으면 '소비자 후생'이 감소해요…자유무역은 교역국가 모두 '윈윈'…가장 '공정'하죠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 거래란 한쪽을 희생시켜 다른 쪽이 이익을 얻는 과정이었다. 즉 모든 거래에서 승리자와 패배자,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주장은 거래는 한쪽만이 이익을 얻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라고 인식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상업 거래는 일시적으로나 가능할 뿐 계속적,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자유시장에서의 거래는 각자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지만 여기서의 이익은 거래 당사자 쌍방 모두를 위한...

  • 역사 기타

    고려때 노비는 '사회적 인격' 있어…조선과 달랐죠…무신정권기엔 정계진출도…'노예제 사회설'은 잘못

    고려는 노비의 복식을 차별하려고 노력했다. 사노(私奴)는 모자를 쓸 수 없다는 금령이 내려졌지만 얼마 있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노는 요대(腰帶)를 할 수 없다는 금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12세기 초 개경을 방문한 서긍은 귀천 간에 복식의 차별이 없음을 기이하게 여겨 그의 견문록에서 몇 차례나 이를 지적했다. 동시대 일본의 노비에게 강요된 복식의 차별은 엄격했다. 일본 노비는 동발(童髮)이며 오모자(烏帽子)를 쓸 수 없었다...

  • 디지털 이코노미

    첨단기술은 물적·인적 자원의 세계화를 촉진하죠

    인류 역사상 생산은 아주 오랜 기간 소비의 인질이었다. 해상에서 부는 바람의 힘 혹은 육상에서의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물건을 운반할 수 없었던 탓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생산한 물건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동할 수 없었고, 생산은 소비가 존재하는 곳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의 시작 다양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란 생산을 소비에서 분리해내는 과정이다. 운송비는 생산과 소비의 단단한 결합을 설명하는...

  • 교양 기타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창의성의 어머니'…사랑의 힘은 생산적이면서 동시에 파괴적이기도

    사랑은 없음을 있음으로 만드는 마술이다.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사랑을 통해 존재하게 됐다. ‘무’라는 상태는 사랑의 부재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발생시키기 위한 원초적인 힘이 사랑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 간의 끌림은 절대적이다. 그 끌림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할 정도로 위험하다. 사랑에 빠진 동물은 자신도 몰랐던 이 힘의 포로가 돼 사랑을 위해 기꺼이 순교할 준비가 돼...

  • 교양 기타

    "경쟁의 역동성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자신의 낙오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강조

    “자유기업 정신과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길에 장애물을 덜 설치하려고 노력한 나라일수록 오늘날 더 번영하고 있다. 창의와 혁신이 가능한 자본주의만이 인류를 가난에서 구하고,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길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거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는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그가 《자본주의 정신과 반자본주의 심리》를 쓴 것은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기류가 곳곳에 퍼져있음을 안타까워...

  • 역사 기타

    고려때 '노비는 주인의 재산'이라는 첫 노예법 생겼죠…고려 노비는 해방 가능성 있는 '기한부 채무노예' 성격

    한국사에서 노비(奴婢)는 삼국시대에 왕실과 귀족의 가내 노예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삼국의 통일전쟁 과정에서 포로 출신인 노비가 증가했다. 7세기부터는 범죄자의 가속을 노비로 적몰(籍沒)하는 형벌이 생겨났다. 그 연장선에서 고려왕조는 노비법을 제정하고 강화했다. 삼국시대의 가내 노예 986년 노비의 가격이 정해졌다. 노는 포 100필, 비는 포 120필이었다. 이 법은 노비가 주인의 재산임을 명시한 최초의 노예법이었다. 1039년에는 천자수...

  • 커버스토리

    손잡은 韓·日 경제인들…"양국 갈등은 모두에 피해"

    한·일 관계가 상대국에 대한 수출 규제 등으로 급속히 악화된 가운데 양국 기업인들이 모여 ‘해빙’ 분위기를 조성키로 뜻을 모았다. 글로벌 분업 체제에서 두 나라 간 공급망 유지가 중요한 데다 냉랭해진 양국 정부가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민간 영역에서 먼저 창구를 열어 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양국 관계 악화로 한때 취소설까지 나돌던 한일경제인회의가 지난 24~26일 서울에서 열렸다. 김윤 한일경제협회장(삼양홀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