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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230호 2010년 2월 8일

논술 따라잡기

[실전 고전읽기] 52. 마크 트웨인「허클베리 핀의 모험」

사회 내부의 위선과 차별을 통렬하게 풍자

미국의 대표작가를 선정한다면 누구를 뽑는 것이 좋을까?

국민작가라는 자리를 놓고 열띤 각축전이 벌어지겠지만 지명도나 인기로 판단할 때 영예의 자리는 아무래도 마크 트웨인에게 돌아감이 합당해 보인다.

마크 트웨인은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데,특히 누구에게나 익숙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문학이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는 평가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효시(嚆矢)'니 '아버지'니 하는 엄숙한 칭호가 통상 부여되게 마련인 부담감으로 인해 거리가 멀어지지는 않는다.

그의 글은 항상 재기 넘치면서도 신랄하고,인생을 꿰뚫는 예리함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따뜻하다.

'어떤 국회의원은 멍청이다' 라고 말했다가 반발이 있자 '어떤 국회의원은 멍청이가 아니다'라고 정정한 마크 트웨인의 일화는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잘 설명한다.

마크 트웨인 본인이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게 이 세상을 살다 갔기에 그의 글 역시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그를 닮았다.

개인의 성품과 문학의 특성을 고려해 어울리는 작가끼리 시공을 넘는 친구를 맺게 한다면,이탈리아의 익살꾼 조반니노 과레스키와 마크 트웨인은 좋은 친구로 엮일 것이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의 글이 익살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도금시대' '바보 윌슨의 비극' '아더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 '전쟁을 위한 기도' 등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풍자한 그의 소설은 비판적 성찰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

또한 소설뿐만 아니라 수많은 강연과 언론기고를 통해 그는 물질문명과 제국주의,사회내부의 구조적 차별에 맞서 평생 열정적으로 사회를 비평했다.

이처럼 친근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이 더 친숙한 데다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한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을 생각해본다면 새뮤얼이니 클레멘스니 하는 어색한 이름보다는 마크 트웨인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

본시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라는 필명은 뱃사람 용어로 배를 운항하기에 안전한 수심을 의미하는 '두 길 깊이'라는 말이다.

미시시피 강 수로 안내인들은 수심이 안전할 때 조타수를 향해 '마크 트웨인!'이라고 외치곤 했다.

이 필명은 그의 성장배경에서 연유한다.

마크 트웨인은 1835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미시시피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12세에 인쇄소 견습공 생활을 시작했고,1857년에는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이 돼 1861년까지 수로 안내인 생활을 했다.

이때의 체험과 추억이 그의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한 세 소설,'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 강의 추억'에 흘러 들어갔다.

그런데 집안 사정으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 마크 트웨인은 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면서 변변한 학교 교육이나 정식 문학수업은 결코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공립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자학자습으로 지식을 쌓았고,언론계로 관심을 돌려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한다면 마크 트웨인의 글이 독특한 활력을 자랑하는 그만의 고유성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문학의 형성과정 때문일 것이다.

1865년 유머 단편 '캘리베러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를 발표해 일약 범국민적 명사가 된 마크 트웨인은 1885년 걸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894년에는 투자 실패 및 본인이 경영하던 출판사의 도산으로 파산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1년간 세계 순회강연을 해 빚을 청산하고 다시 재기하였다.

딸들을 위해 쓴 '왕자와 거지'를 비롯 재치 넘치는 여행기 '철부지의 해외여행기''도보 여행기''적도를 따라서' 등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남기고 1910년 4월21일 뉴욕에서 일흔다섯의 나이로 타계했다.

누구보다도 미국적이지만,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된 마크 트웨인의 글은 다양하게 인용이 되는데,논술에서도 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서울대와 중앙대에서 출제되었다.

중앙대에서는 소설을 상당히 길게 인용하였기 때문에 지면상 다 싣는 것은 곤란해 핵심 부분을 게재하고 대화문 등은 생략한다.

☞ 기출 제시문 1 (중앙대 1999학년도 정시 인문)

두 놈이 정신 없이 다투고 있는 틈을 타서 나는 급히 그 장소를 피해 걸음아 날 살려라고 사슴처럼 강둑 길을 내달렸다.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당분간 놈들은 나와 짐을 만날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숨이 차서 못 견딜 지경이었지만 기쁨으로 가슴이 뿌듯해져 뗏목에 이르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뗏목을 풀어,짐. 이젠 문제없어!" 하고 외쳤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고,윅왬으로부터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짐이 간 곳이 없다!

나는 불러보았다. 다시 한 번 불러보았다. 그 다음 또 한 번 불러보았다.

그리고는 숲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불러보기도 하고,또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그리운 짐은 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풀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략…)

나는 뗏목으로 돌아와 윅왬 속에 들어가 앉아 생각해 보았지만 암만해도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머리가 아파질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이 난국을 해결할 방법이 좀처럼 생각이 나질 않았다.

여기까지 긴 여행을 해왔고,그 악한들을 그렇게까지 섬겨 왔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고,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으니.

그것은 놈들이 겨우 더러운 그 40달러 때문에 짐을 이렇게까지 속였고,일생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노예로 살아가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무정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짐이 어차피 노예로 살아야 한다면 짐의 가족이 있는 고향에서 노예 노릇을 하는 편이 짐에게도 천 배나 좋을 테니까,톰 소여에게 편지를 내어 왓슨 아주머니에게 짐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라고 써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생각은 곧 단념했다.

즉 왓슨 아주머니는 자기 곁을 떠난 짐의 괘씸한 심사와 배은망덕에 화가 난 나머지 짐을 같은 하류 지방에다 또다시 팔아버릴지도 모를 일이고,비록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배은망덕한 검둥이를 의당 경멸하여 늘 짐에게 그 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짐은 사시사철 자기가 천하고 수치스런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또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허클 핀이 검둥일 자유의 몸으로 하는데 조력을 했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질 테지.

만일 그 마을에서 누구라도 만나는 날엔 난 부끄러워서 얼굴도 쳐들지 못하게 될 게 아닌가.

그 까닭은 이렇기 때문이다.

사람은 천한 행위를 한다. 그리고 그 보복을 받기를 싫어한다.

남들이 그 행위를 모르는 한은 수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괴로운 입장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나를 괴롭히고,점점 내가 나쁘고,천하며,지긋지긋한 놈으로 생각되었다.

갑자기 그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언뜻 내 머리에 떠올랐다.

이것은 분명히 신의 섭리의 손길이 내 얼굴을 때린 것이며,나에게 아무 해도 끼친 일이 없는 불쌍한 노파로부터 검둥이를 내가 훔쳐 내고 있을 동안 신이 나의 악행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와 같은 철없는 행동에 대해서 늘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는 괜찮지만 앞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신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무서웠던지 그 자리에 그만 풀썩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래 그렇게 못되게 자라나서 그럴 수밖에 없으니,거기까지 탓할 건 없지 않느냐고 타일러 얼마간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구하려고 했지만 내 가슴 속에서 무언지 모를 존재가 계속 이렇게 책망하는 것이었다.

"주일 학교라는 게 있었잖아? 너는 갈 생각만 있었다면 능히 갈 수 있었을 거다. 갔었다면 그 검둥이에게 해 준 것 같은 짓을 하면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자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기도를 올려,이제까지와 같은 애가 아니라 좀 더 좋은 애가 될 수 있을는지 나 자신을 시험해 보리라고 결심을 했다.

그래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신에게 감추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또 내 자신에게 감추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왜 말이 안 나오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두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죄를 그만두는 척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가장 큰 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옳은 일,깨끗한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검둥이의 거처를 편지로 알리겠습니다'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거짓 기도를 올릴 수는 없다.

나도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나는 가슴속이 고뇌로 가득 찼으며,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워져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하략…)

☞ 기출 제시문 2 (서울대 2010학년도 수시 논술)

그래서 나는 그야말로 고민에 빠졌고,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래 편지를 쓰자. 그리고 나서 기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그러자 놀랍게도 그 순간 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모든 고민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매우 기쁘고 마음이 들떠 종이와 연필을 꺼내고 앉아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왓슨 아줌마에게

도망 노예 짐(Jim)은 파이크스빌에서 2마일 하류에 있는데,

펠프스 씨가 그를 붙잡아놓고 있습니다. 만약 아줌마가 현상금을 보내면 돌려보내 주겠지요.

―― 헉 핀(Huck Finn)

나는 난생 처음으로 죄가 깨끗이 씻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장 기도를 드리지 않고 편지를 아래에다 내려 놓고서 앉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참 이렇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야,하마터면 길을 헤매다 지옥에 떨어질 뻔했잖아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강을 따라 내려오던 우리들의 여행에 생각이 미치자 바로 눈앞에 짐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때로는 달빛 아래서 때로는 폭풍우 속에서 항상 곁에 짐이 보였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얘기 나누고 노래 부르며 웃어대면서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왔지요.

그러나 웬일인지 짐에게 나쁜 감정을 품었던 때는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그 반대의 장면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짐이 자기 몫의 불침번을 선 다음,내가 그대로 잠을 잘 수 있도록 나를 깨우지 않고 내 몫까지 해준 짐의 모습이며,안개 속에서 내가 돌아왔을 때에도,원한으로 두 집안이 싸우던 그 곳 늪지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그토록 기뻐하던 짐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지요.

그리고 늘 나를 귀염둥이 도련님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귀여워해 주었고,나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건 기꺼이 해주었지요.

짐은 늘 나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지요.

맨 마지막으로 내가 뗏목에 천연두 환자가 타고 있다고 하여 짐을 구해 냈을 때,짐이 아주 고마워하며 나더러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했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우연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방금 써놓은 그 편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편지를 움켜쥐었습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해야 했고,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숨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 끝에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그렇다면 난 지옥으로 갈 테다(All right,then,I'll go to hell)."

그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끔찍스런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쓸어 담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그리고는 이제 두 번 다시는 마음 고쳐먹는 일에 대해서 신경 끄기로 했습니다.

그 모든 생각을 머리에서 말끔히 씻어버렸지요.

다시 나쁜 짓을 하기로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나란 놈은 자라나기를 그런 식으로 자라났으니 나쁜 짓은 내 천성에 맞고,착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맨 첫 번째 일로 나는 노예 상태의 짐을 다시 한번 빼내자,아니 그보다 더 나쁜 일이라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것마저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나쁜 짓을 하기로 한 이상,더구나 끝까지 하기로 한 이상,철저하게 해내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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