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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2호 2005년 7월 18일

Entrepreneur

공격적 투자의 천재냐 국제적인 換 투기꾼이냐..'조지 소로스'

1998년 1월3일 밤 김포공항 귀빈실. 한 손에 서류 가방을 든 수수한 옷차림의 초로의 신사가 나타났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조지 소로스였다. 조지 소로스는 국제 금융계의 큰 손으로 통했지만 동남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돼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는 그를 겨냥해 '자본주의의 악마''국제적 환투기꾼'이라며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에게조차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97년 말에 발발한 외환위기 사태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급히 돈(구제금융)을 빌려야 하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미국 금융계의 큰 손들을 초청해 한국에 대한 투자를 부탁했는데 바로 그 첫 번째 인물이 조지 소로스였다. 소로스는 99년 1월 대림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서울증권을 657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환투기는 어떻게 하나

 

국제 금융시장에서 특정 국가의 화폐를 상대로 환투기를 하는 메커니즘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그나라 돈을 빌린다 △그 다음 그나라 돈으로 달러를 사들인다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

 

이상한 메커니즘이지만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돈 시장(화폐시장)에 그나라 돈은 많이 풀리고 달러는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가치가 오르고 그나라 돈 값은 크게 떨어진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 그동안 사들였던 달러를 비싼 값에 일거에 처분하고 빌렸던 그나라 돈을 모두 갚는다. 투기꾼은 빌린 돈 값이 떨어진 만큼 차익을 올린다.

 

예를 들어 1달러에 1000원이던 환율이 1500원으로 오르면 처음에 1조원(10억달러)을 빌린 사람은 이제 7억달러만 팔아도 1조원을 갚을 수 있게 된다.

 

○영국도 당했다

 

투기세력의 이 같은 공격 메커니즘이 실제 1992년 영국에서 발생했다. 1990년 영국은 경제의 취약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1파운드당 2.95마르크의 환율로 유럽환율조정체제(ERM)에 가입했다. ERM이란 유럽공동체가 유럽 단일 통화권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유럽 각국의 통화가치를 연계해 만든 장치였다.

 

그러나 유럽 외환시장에서는 경제력이 더 나은 독일 마르크화를 사기 위해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지자 영국은행은 무려 280억파운드를 투입해 환율 방어에 나섰으나 시장의 투매를 막지 못했다. 결국 영국 파운드화는 20%나 가치가 하락했고 영국은 ERM 탈퇴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조지 소로스는 2주일 만에 10억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악명을 떨쳤다.

 

조지 소로스가 워런 버핏처럼 국제 금융계에서 존경받는 투자자가 아닌 이유는 그가 운영하는 퀀텀 펀드가 헤지 펀드이기 때문이다. 퀀텀 펀드는 일반인들의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뮤추얼 펀드와는 달리 소수 갑부들의 돈을 모아 공격적인 투자를 한다. 퀀텀 펀드는 69년부터 95년까지 연간 35%의 고수익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외환 증시 선물 등 돈벌이가 되면 어떤 상품이든 공격적인 투자를 한 결과다.

 

○소로스의 또 다른 얼굴

 

그러나 소로스는 이처럼 공격적 투자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공산국가의 자유화나 제3세계의 민주화 등에 쏟아붓고 있다. 때로는 해당 국가의 지도자들과 설전을 벌이면서 경제개혁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소로스가 단순한 자선사업가의 영역을 넘어 '실천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의 생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는 14세 때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끌려갈 뻔하는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헝가리로 돌아왔지만 다시 소련 군정을 피해 영국으로 떠났다.

 

그는 17세부터 26세까지의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을 영국에서 보냈지만 생활은 비참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많은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웨이터,마네킹 조립 공장 직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런던 정경대학(LSE)에 입학했다.

 

그는 여기서 세계적인 석학 칼 포퍼를 만나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소로스는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지칭했던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열린 사회인 개인주의 사회를 지향했다.

 

그는 80년대 말 동유럽·구소련 체제변화 과정 때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구소련 붕괴 후 과학자들의 생계가 막막해지자 1억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자선사업에 투입한 액수가 총 250억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태완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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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일시급변 예측..'반사성 이론' 명성 ]

소로스는 '반사성(Reflexivity) 이론'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기반으로 투자에 성공해 관심을 모은다. 반사성 이론은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관찰당하는 쪽에 영향을 준다는 칼 포퍼의 이론을 원용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특정한 인식은 특정한 사건에 의해 생기지만 그 인식은 또 다른 사건을 촉발하고 형성한다.

 

또 일반적 통념이나 집단적 편견이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비판에 의해 무너지면 새로운 이론이 기존 이론을 대체한다. 소로스는 이런 원리를 종합해 주식시장의 일시적인 폭락이나 과열을 예측하는 반사성 이론을 만들어냈다. 소로스는 자신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활용해 1960년대 말 미국 주가가 폭등할 당시 엄청난이익을 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소로스의 재산 규모는 70억달러.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43억달러보다 1.6배나 많다.

 

―억! 무지하게 부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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