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이야기

(15) '최초의 투기'모란꽃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집 한 채 값을 훌쩍 뛰어넘던 당나라 시대 모란꽃…'네덜란드 튤립'보다 900년이나 앞섰던 투기 광풍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꽃을 사다(買花)’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장안의 봄이 저물려 하니(帝城春欲暮)
시끌벅적 마차들이 다닌다(喧喧車馬度)
모두들 모란의 계절이 왔다며(共道牡丹時)
줄지어 꽃을 사러 간다(相隨買花去)
귀천 따라 일정한 값이 없으니(貴賤無常價)
낸 돈만큼 꽃송이를 보게 될 터(酬値看花數)
(…)
집집마다 따라들 하니 풍속이 되어(家家習爲俗)
사람마다 정신없이 열중해 깨닫지 못한다(人人迷不悟)
어느 늙은 시골 농부가(有一田舍翁)
우연히 꽃 파는 곳에 왔다가(偶來買花處)
고개 떨구고 홀로 길게 탄식한다(低頭獨長嘆)
그 한숨을 알아채는 이 아무도 없다(此嘆無人諭)
한 포기 짙은색 모란꽃이(一叢深色花)
중농 열 집의 세금이라도(十戶中人賦)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집 한 채 값을 훌쩍 뛰어넘던 당나라 시대 모란꽃…'네덜란드 튤립'보다 900년이나 앞섰던 투기 광풍
시가 묘사하는 것처럼 전성기 당나라 장안에선 오늘날 닷컴 열풍, 부동산 광풍, 펀드 열풍에 버금가는 모란 광풍이 불었다. 모란은 꽃으로 정원과 사원, 각종 연못과 공공기관을 장식하길 좋아하던 당나라 사람들이 최고로 친 꽃이다. 당대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연못의 연꽃은 수수하긴 하지만 모란에 비해선 아취가 적다”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인 모란이 만개할 때 장안 전체가 들뜰 수밖에 없다”고 흥얼거렸다. 부의 상징인 모란꽃모란꽃(사진)에 대한 애착은 수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수와 당 왕실에서 시작돼 민간으로 빠르게 번졌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장안의 귀족들은 모란을 앞다퉈 사들였다. 연꽃이 불교와 관련된 정신적 고귀함의 상징이었다면 빨간색과 자주색 모란은 부의 상징이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꽃을 보았지만, 모란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거나 “오만 가지 꽃 중에 으뜸”이라는 식의 찬사가 뒤따랐다.

당나라 장군 혼감(渾)은 당대의 유명 시인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가진 모란의 아름다움을 읊게 했고, 이 자리에서 백거이는 “모란을 가지는 것은 장안에서 가장 고귀한 향기와 색을 소유하는 것”에 비견했다. 이에 장안의 재력가들은 수천전을 내고 꽃 한 송이를 샀고, 한 그루에 수만전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한 승려에게서 귀한 모란을 그루째 훔친 뒤 위안조로 황금 등을 남기고 떠난 도둑의 일화도 있다.

“도성의 대로마다 꽃 피는 시절, 만 마리 말과 천 대의 수레가 모란을 보러 갔다”는 게 당대의 평이다. 모란 때문에 유명해진 사찰과 정자, 개인의 저택도 여러 곳 있었다. 모란꽃을 키우고 재력가의 정원을 가꾸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전담 ‘중산층’도 등장했다. 특히 모란이 피는 3월 중순에 열리는 모란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모란은 집 한 채 가격을 훌쩍 뛰어넘었다. 모란 광풍을 통해 권세 있고 부유한 집에서 온갖 사치를 부리며 앞다퉈 모란꽃을 즐겼다. 이 같은 모란 열풍은 장안을 벗어나 쑤저우 항저우 등 중국 남부 지역으로도 번졌다. 사치 풍조가 자연스레 인심을 퇴폐하게 만들어 당나라의 쇠락을 재촉한 것이라고 《장안의 봄》의 저자 이시다 미키노스케는 설파한다. 당대의 시인들은 “모란꽃 탓에 장안의 10만 가구가 파산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당나라 쇠락을 재촉했다는 평가흔히 경제 발전과 신규 일자리의 원동력으로 테크놀로지와 취향(taste)이 꼽히곤 하는데 당시 ‘조숙한’ 국가였던 당나라는 전근대 시대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앞선 기술 발전과 다양한 취향을 갖췄다. 하지만 이로 인한 각종 문제도 일찍 수반된 셈이다. 우선 부가 넘치면서 상류층의 취향은 특정 음식과 의복, 습관, 공공시설 등에도 적용됐다. 당시 장안의 귀족들은 의복과 헤어스타일, 가구, 서예, 스포츠, 시문 짓기, 연극에서 모두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춤과 노래 등에서도 중앙아시아 이국풍 문화를 받아들이며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중국은 전근대 사회로는 드물게 취향이 경제 성장의 동력 역할을 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이는 잘 알려진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와 비슷한 상황이 900년 이상 앞서 나타난 것이다. NIE 포인트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집 한 채 값을 훌쩍 뛰어넘던 당나라 시대 모란꽃…'네덜란드 튤립'보다 900년이나 앞섰던 투기 광풍
① 물건의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서둘러 돈을 주고 산다는 측면에서 볼 때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② 기술혁신뿐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이 경제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왜일까.

③ 당나라의 모란꽃, 네덜란드의 튤립 등에 이어 최근 논란이 되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도 투기에 해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