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720호 2021년 8월 30일

책 이야기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예술혼 불태우기 위해 고난을 택한 천재, 고갱을 만나다


《달과 6펜스》는 제목의 의미부터 살펴봐야 하는 작품이다. 달은 지구를 도는 자연위성이고 6펜스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 값이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나지만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달이 상상의 세계나 본원적 감성을 뜻한다면 은화는 돈과 물질의 세계를 대변한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모델이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소설 속 스트릭랜드의 여정은 고갱의 실제 삶보다 훨씬 단순하고 극적이며 신비스럽게 펼쳐진다. 6펜스가 대변하는 소시민의 일상을 던져버리고 천재성 발현을 위해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달의 삶은 많은 사람의 로망이기도 하다. 소설을 다 읽은 후 고갱의 삶을 추적해 어떤 면이 비슷하고 어떤 면이 다른지, 비교하다 보면 소설 작법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서머싯 몸은 1904년 파리에 머물면서 화가들과 어울린 적이 있다. 폴 고갱이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였다. 몸은 1916년 타히티를 비롯한 남태평양 섬들을 여행하면서 고갱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고, 1919년에 《달과 6펜스》를 발표했다. 이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고갱의 신비함이 더욱 부각됐고, 서머싯 몸이 4년 전에 발표한 《인간의 굴레》도 재평가를 받았다.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소
《달과 6펜스》의 화자는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를 직접 만나기도 하지만 못 만난 기간은 행적을 추적해 기술한다. 성실한 생활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스트릭랜드의 행동에 대해 화자는 천재적인 예술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런 면이 독자들에게 일상과 예술, 현실과 이상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마흔 살의 스트릭랜드는 두 자녀를 둔 중산층 집안의 가장으로 증권회사 직원이었다. 평범하고 성실했던 그가 느닷없이 런던의 집을 떠나 파리의 허름한 호텔에 은거한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찾아온 화자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집을 나왔다”고 밝힌다. “당신 나이가 너무 많다. 지금 시작해봐야 일류가 되기 힘들다”면서 가족과 절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설득하지만 스트릭랜드는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겠어요”라고 항변한다.

이후 스트릭랜드는 험난한 삶을 살게 되고, 남태평양 타히티까지 가게 된다. 헌신적인 원주민 처녀와 깊은 산속 오두막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그림에 몰두하다가 한센병에 걸려 시력을 잃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예술혼을 불태우다 타히티에서 숨을 거둔다.

100년 전 소설 속 창작자와 요즘 작가들의 생활 형편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스트릭랜드 사후에 그림 값이 엄청나게 올랐지만 생전에는 물감과 종이를 사기 위해 끊임없이 잡일을 해야 했다.
예술의 열정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많은 사람이 안락한 삶을 뒤로 한 채 차가운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 쉽고 편한 길이 있지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라고 외친 스트릭랜드처럼 달의 세계로 투신해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 험난하지만 꿈을 향해 달려간 이들이 인류에게 예술 작품을 선물로 남겼다.

그렇더라도 《달과 6펜스》 속의 스트릭랜드처럼 가족은 물론 자신의 건강마저도 돌보지 않으며 창작에 몰두해야 하는 걸까. 스트릭랜드를 진료했던 의사가 화자에게 들려준 말에 귀기울여보자.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려고 해요. 스트릭랜드가 그런 사람이지요. 진리 대신 미를 추구했지만요.”

소설 속에는 스트릭랜드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그들을 만나면 100년 전 사람들의 사고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의 목적을 현실 논평보다 재미에 둔다고 말한 서머싯 몸의 말대로 그의 소설은 매우 재미있다. 폴 고갱이라는 천재 화가의 열정을 추적한 《달과 6펜스》를 읽으며 뜨거운 달빛 감성과 6펜스의 차가운 감촉을 동시에 느껴보라. 또한 내 속에서 빛나는 달빛, 예술의 열정을 어떻게 발현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