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57) 인턴 (下)
열정은 은퇴하지 않는다…액티브 시니어의 힘, 한정된 일자리에 벌어지는 세대 간 갈등 어찌할까
“처음엔 은퇴생활이 참신해서 즐겼어요. 무단결근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은퇴한 70세 노인이 30세 워킹맘 최고경영자(CEO) 밑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서로에게 인생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해주는 내용을 담은 영화 ‘인턴’(2015). 영화 도입부에서 전화번호부 제조회사의 임원이었던 벤(로버트 드 니로 역할)은 자신의 은퇴생활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벤은 궂은 날씨에도 오전 7시15분이면 집을 나서 스타벅스로 향한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딘가의 구성원이 된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여행과 각종 취미생활까지 하지만 공허함은 채울 수 없다. 40여 년간 한결같이 직장으로 출근하던 생활이 그리워서다. 정년제도가 없는 미국의 완전경쟁 노동시장
벤은 은퇴했지만 정년퇴직자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60세라는 정년을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에는 정년제도가 없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정년제도를 연령에 의한 고용 차별로 보고 폐지했다. 이 국가들에서는 판사 조종사 경찰 등 일부 직종에만 정년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 등은 시기와 상관없이 기업이 원할 때 원하는 사람을 뽑을 수 있다. 능력만 있다면 2030세대 젊은이나 7080세대 노인이나 취업의 문은 동일하다. 미국 노동시장은 ‘완전경쟁’에 가깝다.

완전경쟁 노동시장에서 기업은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된 균형임금 수준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노동을 공급받을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개별기업의 노동공급곡선은 <그래프 1>처럼 균형임금 수준에서 수평의 형태를 띤다. 경제학에서 ‘탄력성’은 수요량 및 공급량이 그 결정 변수의 변화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를 말하는데, 완전경쟁 노동시장에서 노동자 수는 가격 변화에 따라 완전탄력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미국 기업들이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직원들의 고용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것도 이런 완전경쟁 노동시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년연장 이슈가 뜨거운 한국
열정은 은퇴하지 않는다…액티브 시니어의 힘, 한정된 일자리에 벌어지는 세대 간 갈등 어찌할까
반면 국내에서는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며 정년 연장 이슈가 뜨겁다. 정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향’이 기름을 부었다. 경로우대제도 개편 논의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경로우대 대상 연령이 65세에서 70세로 상향될 것이란 전망이다. 65세는 경로우대뿐 아니라 기초연금 수급 등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기준이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경로우대 연령을 늦추는 문제는 국민연금 등 각종 복지혜택 수령 시기와 결부돼 복지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미 정부는 203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5세로 늦추기로 결정했다. 정년 연장 없이 연금 수급이 65세로 늦춰지면 5년간의 ‘소득 크레바스’(연금 개시 전까지 소득 없이 지내는 기간)가 생긴다. 수급 개시 연령이 70세로 조정된다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프2>처럼 국내 은퇴자들의 소득 크레바스 기간은 현재 평균 12.5년에 달한다. 정년 연장 논의가 자연스레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년 연장은 청년실업 문제와 상충된다. 가뜩이나 해고가 자유롭지 않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다 보니 정년 연장은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키우는 쪽으로 작용한다. 기업들로선 결국 신규 채용을 줄이는 쪽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부하 직원에서 조언가로벤이 인턴을 시작한 곳은 의류 쇼핑몰 스타트업 어바웃더핏. 초등학생 딸을 둔 워킹맘인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역할)이 이곳의 CEO다. 줄스는 벤이 자신의 인턴으로 있는 게 영 못마땅하다. 벤의 채용은 회사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시작한 노인 인턴 프로그램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의 연륜과 노하우를 겪게 되면서 ‘시니어 인턴’에 회의적이던 줄스는 점차 마음을 연다. 어느 날 벤은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울고 있는 줄스를 발견한다. 외부에서 CEO를 영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직원의 의견을 듣고 나서다. “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하면 내가 어떻게 마음대로 일할 수 있겠어?”

직원의 권고대로 줄스도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후보자 면접을 위해 벤과 함께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간 줄스는 외부 CEO를 영입하기로 결심한다. 출장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며 줄스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과 중요 결정을 분담하면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줄스가 외부 CEO 영입을 결심하게 된 것은 사실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 자신이 회사 일에서 벗어나 가정에 보다 전념하면 어린 딸을 돌보기 위해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된 남편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희망을 한 것이다. 최종 결정 날 아침 줄스는 벤을 찾아간다. 줄스를 옆에서 지켜봐온 벤은 이렇게 말한다. “이 회사는 사장님 꿈 아닌가요?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란 희망 때문에 꿈을 버린다고요?”

한때 벤을 다른 부서로 옮기려고까지 했던 줄스는 벤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영화는 나이가 뒤바뀐 듯한 상사와 인턴 관계에서 나이를 초월한 ‘베스트 프렌드’가 된 두 사람이 같이 공원에서 태극권을 하며 미소짓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송영찬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① 정년 없이 오래 일하되 해고가 쉬운 미국식 노동시장이 좋을까, 아니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한국식 노동시장이 좋을까.

②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경제충격 완화를 위해 정년을 연장해야 할까.

③ 일자리에 대한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