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유휴 부지에 아파트 4000가구를 새로 건설하려던 계획이 1년도 안 돼 백지화됐다. 2020년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방안’(8·4 공급대책)에 포함된 유력한 ‘인기 지역’이 정부·여당의 협의로 전격 배제되면서 정부 주도 공급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불신을 받아온 부동산대책이 더욱 신뢰를 잃게 되면서 집값 불안을 부채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른다. 특히 이번 결정은 주민 반발에 중요 정책이 뒤집혔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존 발표된 정책이 무산되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무주택자는 무엇을 믿고 집마련 계획을 세우겠느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정부 정책이 과천시의 반대로 바로 철회된 것에 주목하면서 “이제 지방자치단체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걱정도 나온다.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등 수도권의 주택공급에서 정부는 아예 손을 떼고, 민간 중심의 재개발·재건축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반대하는 사안이라면 정부도 정책방향을 바꾸는 게 당연하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정부 소유 부지에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정부 스스로 포기한 것은 옳은 결정인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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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주민반대 사업 강행 안 돼 정부 더 많은 노력 필요‘정부과천청사 아파트 건설 백지화’는 겉으로만 보면 정부와 여당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정책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황의 본질, 정책 전환의 기본 취지를 볼 필요가 있다. 주민이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책이라도 마구잡이로 밀어붙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4000가구의 아파트를 건설하려던 부지는 기존 정부청사에 딸린 유휴지로 정부 소유 땅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천 시민이 평소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 장터를 여는 등 공원처럼 사용해온 땅이었다. 이런 터에 임대주택을 포함해 수천 가구의 주택을 세우려고 하니 인근 주민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제한된 공간에 주택이 더 밀집하면서 쾌적성이 떨어지고, 다른 편리 시설은 유보된 채 집만 추가되니 ‘생활형 주민 이기주의’가 발동하기도 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주민이 반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밀어붙이기로 공급 후보지에 일방적으로 포함시켰던 만큼 뒤늦게라도 주민 의사를 반영해 원래 상태로 돌려야 한다. 과천 시민은 이 문제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천시장에 대한 불신임 운동까지 벌였다. 결국 주민소환 투표까지 하겠다고 나섰고, 투표는 실제로 진행된다. 이런 상황이니 과천시가 주민 의견수렴에 나서 정부와 여당을 설득해 결국 방향을 바꿨다. 이런 과정을 돌아볼 때 논란의 여지도 있지만, 주민이 반대하는 일을 중앙정부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 앞으로 다른 국정 현안에서도 현지 주민, 해당 지역의 의사는 최우선적으로 반영돼야만 한다. 그게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시행하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나.

4000가구 공급계획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다. 대상지역만 청사 유휴지에서 지역 내 새로 건설되는 3기 신도시 예정지(과천지구)로 바뀐다. 아직 추진 단계인 신도시의 설계 계획 변경으로 4300가구 정도 추가 주택 건설이 대안으로 제시돼 있다. [반대] 허구성 드러난 공공주도 공급 지자체 협조 없으면 국정 난항2020년 ‘8·4 공급 방안’은 중요한 주택정책으로 전체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집값 급등기 때 공개 발표된 이런 중대 정책이 일부 주민이 반대한다고 손바닥 뒤집듯 바로 바뀌는 게 온당한가. 정책이라는 게 이럴 수 있나.

무엇보다 여러 차례 당정협의를 거쳐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가 함께 마련한 주택공급 대책의 핵심 지역을 정부·여당 스스로 배제해버렸다. 국토교통부 실무자들도 “여당이 이렇게 쉽게 방향을 바꿀지 상상도 못했다”며 자탄하고, 냉소할 정도다. 과천 주민의 반대의견을 모른 채 확정·발표된 사안도 아니었다. 그런 결정을 전격적으로 바꿔버렸으니 정부가 주택공급 대상지로 발표한 다른 예정 지역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빚어질까. 곧바로 태릉·용산·상암 등 서울시내 후보 지역에서도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과천 주민은 실력 행사로 자신들 의지를 관철했다”며 따라 할 것이다.

중요한 문제점은 더 있다. 명분이 있고 정부 의지가 분명해도 지자체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해내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버린 점도 주목할 만하다. 부동산·주택 정책처럼 중앙정부와 시·도, 시·군·구 권한이 복잡다기하면서 때로는 모호한 분야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이번에 정부 공급대책에 제동을 건 과천시장은 같은 여당이면서도 반대에 앞장섰다. 서울시처럼 야당이 단체장인 곳도 있는 데다, 지방의회 입장도 달라 의사결정과 집행은 한층 복잡해지면서 어려워졌다. 앞으로 이런 상황을 누구인들 원만히 풀 수 있겠나. 중요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 간 원만한 협의가 한층 절실해졌고, 정부 독주로는 이제 어떤 일도 쉽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나선 ‘공공주도 주택 공급’의 취약성·허구성이 드러났다. 정부 땅에 정부가 집 짓는 것까지 무산됐다. 장기간 비어있는 정부청사의 유휴부지조차 활용 못 할 지경이니 민간 주택지역의 재개발·재건축을 공공주도로 한다는 건 더 어렵게 됐다. √ 생각하기 - '오락가락 행정' 3기 신도시에도 악영향 … 정략 판단 경계해야
[시사이슈 찬반토론] '주민 반발 수용' 과천 아파트 백지화…타당한가
정부의 정책 일관성·신뢰성 유지와 반발하는 해당(관련) 주민의 의견 수용은 어느 선에서 어떻게 타협되고 절충될 수 있을까. 문제 제기하는 주민의 대표성도 따져봐야 하고,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한 정책과 직접 이해관계가 얽힌 주민 사이에서 균형점 찾기도 중요하다. 어떻든 정책은 다수의 행복권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반대의견이 생길 때마다 백지화하고 방향을 바꾼다면 어떤 정책인들 유지될까. 더구나 ‘과천 아파트 백지화’는 여당 소속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의식했다는 점에서 정치·정략적 판단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처음 발표된 청사부지 활용은 백지화한 채 3기 신도시 예정지(과천지구) 설계변경을 통한 공급 확대가 대안으로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사정이 어렵다고 이렇게 미래형 도시의 ‘자족용지’를 막 줄이면 “베드타운에서 탈피하겠다”는 3기 신도시 건설 계획까지 엉망진창 된다. 실수요자가 외면하는 매력 없는 신도시는 만들어 봤자다. 정책방향이 쉽게 바뀌면 정부와 여당이 발표한 다른 공급 계획이나 방침도 의심받게 된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서민의 주거복지도, 주택시장의 안정도 멀어진다는 게 문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