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이야기

(35·끝) AI 포비아를 극복하는 방법
이세돌 9단(오른쪽)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맞대결하는 모습.  한경DB
이세돌 9단(오른쪽)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맞대결하는 모습. 한경DB
옛 소련의 프로 체스선수 가리 키모비치 카스파로프는 1985년 세계 챔피언에 올라 2000년까지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런 카스파로프에게 1989년 도전자가 나타났다. 도전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국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소트’였다. 그러나 카스파로프가 두 판을 모두 이겼다. 기계가 인간 영역인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기 어렵다는 게 세상의 반응이었다. IBM은 7년이 흐른 1996년 ‘딥블루’로 다시 도전해왔다. 여섯 판을 겨뤄 3승2무1패로 카스파로프가 또 이겼다. 그러나 이듬해 5월, 재대결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빚어졌다. 카스파로프가 1승3무2패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후 몇 차례 대결에서 기계가 계속 이기자 ‘인간 대 기계’의 체스 대결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한동안 잊혔던 ‘생각하는 기계’가 2011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슈퍼컴퓨터 ‘왓슨’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 두 명과 겨룬 것이다. 왓슨은 사람이 말하는 자연어의 소리와 의미를 이해했고, 단어의 뉘앙스까지 정확히 파악해 여유 있게 우승했다.

2016년 3월 또 한 번 세기의 대결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바둑이었다. 결과는 인공지능(AI)의 승리였다. 구글이 6억달러에 사들인 영국 벤처기업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압도했다. 이제 기계가 넘보지 못할 인간의 영역은 없고,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의 삶은 어떨까? 온갖 비관적인 질문과 잿빛 전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의사가 된 왓슨, 암 진단 정확도가 94.6%놀랄 만한 능력의 AI는 그 모습부터 기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퀴즈쇼에서 우승할 때의 왓슨은 방에 냉장고 10대를 세워 놓은 규모였다. 왓슨은 백과사전, 어학사전, 참고문헌, 위키피디아 등 2억 페이지에 달하는 데이터를 활용했다. 알파고도 1200개의 컴퓨터가 연결된 병렬 시스템이었다. 왓슨은 퀴즈쇼 이후 의학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하고 있다. 왓슨은 전문의보다 암 진단 정확도가 훨씬 높다. 미국종양학회에 따르면 전문의의 암 진단율 정확도는 약 80%인데 왓슨은 대장암 98%, 방광암 91%, 췌장암 94%, 자궁경부암은 100%를 기록했다.

이렇듯 암 진단 정확도가 높은 것은 왓슨이 300여 종의 의학저널, 200여 종의 의학 교과서, 1500만 페이지의 전문 정보를 습득하고 암 관련 논문을 실시간 수집해 활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병원들이 왓슨을 도입했다. 여기서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미래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일자리까지 위협한다고 우려하지만 거꾸로 의사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다. 왓슨은 은행의 대출 심사, 고객 맞춤 서비스에도 활용되고 있다. 우수한 인공지능도 사람처럼 할 수 없는 것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막연히 불안해한다. 자연이 아닌 인공 산물에 대한 본능적 거부 심리겠지만, 미래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린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크다. 특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슈퍼컴퓨터 HAL 9000,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그런 사례다. 스스로 판단하고 인간을 공격하기까지 하는 강력한 AI는 공포 그 자체다. 이런 영화를 수억 명이 본 데다 AI가 바둑 고수 이세돌을 이긴 것이 더해져 AI 포비아(공포증)가 적지 않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적이 될 존재인가? 인공지능은 ‘약한 AI’와 ‘강한 AI’로 나뉜다. AI는 공학적으로 ‘문제를 푸는 기능’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약한 AI는 인간이 제시한 특정 영역의 문제를 푸는 수준이고, 강한 AI는 영역을 특정하지 않아도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가리킨다. 왓슨과 알파고는 특정 분야에 최적화된 약한 AI에 속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어떤 의도를 갖고 판단해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해 가능한 답을 정교하게 비교해 빠른 시간 안에 자동으로 찾아낸다. 반면 강한 AI는 영화 속 AI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강한 AI는 언제 실현될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 즉 특이점을 2045년께로 예상했다. 이것이 50년 뒤가 될지 100년 뒤가 될지 이보다 앞당겨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데이터가 많아지고 처리속도가 빨라지고 알고리즘이 정교해질수록 인공지능은 더 빨리 똑똑해진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은 딥러닝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검색 엔진을 통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특정 분야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래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을 찾는 것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지 못할 직업을 찾을 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이용해 더 잘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현명하다. 한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은 컴퓨터, 산업용 로봇, 왓슨 같은 기계가 더 낫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사람처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상하는 힘이다. 미국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은 “세계 발전을 촉진하는 주된 연료는 지적 자산이고 제동장치는 상상력 부족”이라고 말했다. 막연한 불안감을 극복하고 인간 고유의 영역을 넘나드는 기계를 활용하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①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작곡이나 그림 그리기 등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는데, 인공지능이 하지 못할 인간 고유의 영역은 무엇일까.

②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고 로봇이 인간이 할 일을 대체하는, 곧 다가올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③ 지금까지 발전해온 경제세계사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