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
과학과 놀자 (42) 뇌와 컴퓨터 사이 소통
뉴럴링크에서 발표한 삽입형 BCI 시스템. 뇌에 이식하는 칩은 동전 모양과 크기로 스마트폰과 연동시켜 뇌 신호를 기록하도록 고안됐다.  출처:뉴럴링크 홈페이지
뉴럴링크에서 발표한 삽입형 BCI 시스템. 뇌에 이식하는 칩은 동전 모양과 크기로 스마트폰과 연동시켜 뇌 신호를 기록하도록 고안됐다. 출처:뉴럴링크 홈페이지
최근 한 방송사에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과 인간이 대결을 펼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골프, 심리인식, 주식투자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 맞춰 개발된 AI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 간의 대결이어서 화제가 된 이 프로그램에서 인간은 6회의 대결 중 4회 승리했다. 인간의 우세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2021년의 AI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완전히 대체한다는 미래는 어제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등장하던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 가까워진 것이다.

AI는 결국 인간의 두뇌를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을까? 기술적 진보가 없다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수많은 정보를 기록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은 AI가 훨씬 우수하지만, 인간만이 가진 직관과 고차원적 사고를 대신하기에는 AI의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는 고등 연산과정 동안 밥 한 그릇 정도로 충당 가능한 에너지만을 소모한다는 장점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을 소모하는 AI와는 차원이 다른 효율성을 가진 것이다. 컴퓨터와 뇌를 연결하기 위한 뇌공학자들의 노력
사람과 AI(인공지능)의 대결     출처: Freepik.com
사람과 AI(인공지능)의 대결 출처: Freepik.com
그렇다면 이렇게 우수한 인간의 뇌를 AI와 연결해, 고차원적인 결정은 AI 대신 인간이 할 수 있게끔 하면 어떨까? 또는 반대로 AI가 분석한 방대한 정보를 인간의 뇌로 전달받아 벼락치기 공부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소통이 자유자재로 이뤄진다면, 뇌와 AI의 장점을 모두 살린 신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나 동작을 할 필요 없이 생각만으로 서로 의사를 소통하거나, 자동차 등 기계를 조작하는 영화 같은 일도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많은 회사가 앞다퉈 우리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이렇게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뇌에서 내리는 명령과 생각을 컴퓨터에 즉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뇌-컴퓨터 소통(BCI: brain-computer interface)’이라고 한다.

BCI는 뇌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라 크게 침습형과 비침습형 두 가지로 나뉜다. 비침습형 BCI는 관자놀이나 두피에 전극을 붙여 뇌파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수술이 필요 없어 간편하지만, 우리 뇌 안의 정확한 전기신호를 읽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반면 침습형 BCI는 신호를 감지하는 장치를 두개골 안의 뇌에 삽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신호 감지 장치가 뇌와 맞닿아 있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뉴런으로부터 발생한 미세한 신호를 직접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 뇌는 자신의 허락 없이 접속한 침입자가 나타나면 즉시 공격하는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foreign body reaction). 이 때문에 장치의 성능이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뇌의 방어 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은 보다 생체 친화적인 물질을 활용해 뇌 속의 세포들과 상생할 수 있는 BCI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 생활에 주로 쓰이는 단단하고 강도가 높은 전극 재료 대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고분자를 전극 재료로 사용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뇌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주변 세포들과 잘 융화할 수 있는 BCI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2019년 미국 하버드대 과학자들이 발표한 ‘뉴런 친화적 전극(NeuE: neuron-like electronics)’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연구진은 연약한 뇌에 손상을 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체 전극 시스템을 종잇장보다 얇게 가공해 실을 엮어 놓은 형태의 전자소자를 제작했다. 이렇게 제작된 시스템은 기존의 단단한 전극에 비해 뇌 안의 세포와 잘 융화해 부작용 없이도 장기간 뇌 신호 측정에 활용할 수 있다. BCI의 미래하버드대와 같은 대학 연구실에서뿐 아니라, 뇌에 칩을 심는 시도는 이미 병원과 기업 차원으로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인간은 AI에게 판단의 결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라는 취지를 내세워 2016년 뉴럴링크(Neuralink)라는 뇌공학 스타트업을 설립해 많은 자본을 투자한 바 있다.

그 결과 2020년 8월, 뉴럴링크는 정수리 부분에 가로 22.5㎜, 두께 8㎜의 ‘링크 0.9’라는 이름의 두뇌 칩을 이식한 채 두 달 동안 생활한 돼지 ‘거투르드(Gertrude)’를 공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소개한 방송에서는 돼지가 걷거나 음식을 먹을 때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칩이 전달받아, 실시간으로 컴퓨터에 기록되는 장면이 중계됐다. 뉴럴링크의 최종 목표는 이런 칩을 인간의 뇌에 심어 컴퓨터와 인간이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동물실험이 주로 이뤄지고 있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BCI 기술이 보다 완벽해진다면 뇌질환, 척추손상, 신체마비 등의 질환으로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두뇌 칩을 이식해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서로의 뇌파를 읽어 소통하고, AI에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과학기술이 더욱 더 발전한다면, 시력 교정을 위해 라식 수술을 받는 것처럼 두뇌 칩을 이식받는 미래도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다. 한걸음 더
우리 뇌가 에너지 효율적인 이유
성혜정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성혜정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우리 뇌의 내부에는 뉴런(neuron)과 시냅스(synapse)를 잇는 방대한 연결 구조가 병렬로 이뤄져 있다. 뉴런은 신경계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나트륨이나 칼륨 통로와 같은 이온 통로를 통해 전기적인 방법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세포다. 이런 뉴런들은 우리 뇌 안에 약 1000억개 존재하고, 시냅스라 불리는 연결지점을 통해 서로 이어져 있다. AI 내부 반도체 칩들이 가느다란 전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반도체 칩 사이의 전선들과는 달리, 시냅스는 수시로 이어졌다 끊어지면서 정보를 이웃 세포에게 전달한 뒤 불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삭제하는 능동성을 가진다. 이를 ‘시냅스 가소성(synapse plasticity)’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 뇌는 AI와는 달리 불필요한 정보를 반도체 칩 깊숙한 어딘가에 남기지 않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최적의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