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4차 산업혁명과 정치개혁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수도는 부유했지만 주위를 둘러싼 12개 구역은 굶어죽을 정도로 가난했다. 국가 지도자는 수도인 캐피톨 시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매년 경기를 개최했다. 각 구역에서 10대 소년, 소녀 1명씩 뽑아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시합을 벌였다. 패자는 죽음에 처했고, 승자는 명성과 영광을 얻었다. 우승자의 고향에는 상금과 선물도 지급되었다. 소설 《헝거게임》의 이야기다. 과거의 교훈《헝거게임》의 이야기는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강력하게 진압하는 사례다.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소설 속 불안과 불만, 지역별 불평등은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소득과 의료, 퇴직지원과 관련된 기존 방식을 위협하고 있다. 동시에 필요한 만큼 일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공급이 일자리 수를 웃도는 현상은 특정 국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희망을 잃고, 이는 사회적 불안과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 변화는 과거에도 있었다. 동일한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전환할 때 사회가 느꼈던 충격은 오늘날보다 심했을 것이다. 역사학자 그레고리 클라크에 따르면 1770~1810년 산업화의 충격으로 영국의 실질임금은 10% 하락했다. 실질임금이 회복된 것은 산업화가 시작되고 60~70년이 지난 뒤였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량생산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자 노동자 재교육, 아동노동에 대한 규제 등 새로운 해결책들이 필요했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새로운 정책과 비즈니스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았다. 산업 시대로 전환하는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와 실업보험이 개발되었고,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의회가 소득세를 징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 수정이 이뤄졌다. 경제분야에서 시작된 변화를 정치개혁이 뒷받침하자 정부와 비즈니스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오랜 기간 번영을 누리게 된 이유다. 광범위한 구조적 변화가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된 것이다. 오늘의 문제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확산이 사회에 미치는 사회경제적 문제는 생각보다 크고, 시급한 대처가 필요하다. 산업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일자리뿐만이 아니다. 플랫폼 경제를 담아내지 못하는 산업화 시대의 경쟁정책 역시도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경제와 제도의 긴장감 대가를 변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상이 짊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로 표출된다. 구조적 변화가 초래한 양극화로 인해 대립과 정체가 심해져 정치·경제 지도자들은 상대방의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굳이 시급한 조치와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정치적 불만은 깊어지고, 경제적 단절이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적 성과와 정치적 대표성의 부조화 현상도 디지털 전환 시대 발생하는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미국의 경우 전체 카운티의 15%가 국내총생산의 64%를 창출한다. 이들 부유한 지역의 대부분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표를 던졌다. 나머지 85%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국내총생산 가운데 이들의 기여는 36% 수준이었다. 디지털 사회에서 두 집단 간 경제적 격차가 금세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경제적 성과와 정치적 대표성 사이의 격차는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 인공지능, 로봇의 발전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와 정치개혁의 조화벤 버냉키 전 중앙은행 의장은 “경제 성장은 좋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성장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세상이 보다 복잡해진 것이다. 디지털 전환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에만 있지 않다.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의 간극을 얼마나 줄이느냐도 기술만큼 중요한 요인이다. 앞으로 몇 년간 기술로 인한 상당한 경제적 단절이 발생할 것이다. 절단면을 넘지 못한 주체들의 분노는 정치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한편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도 과도한 세금 부담을 막기 위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결국 경제적 단절은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필요한 정책과 혁신의 장애물이 되어 긴장감을 가속화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기술과 경제성장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술은 변화의 촉매이고, 성장은 결과일 뿐이다. 기술이 영향을 미칠 사회의 다양한 단면이 조화를 이룰 때 성장과 발전이라는 결과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포인트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는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 불러와
정책으로 구조적 변화 이끌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