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25) 옥자 (下)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슈퍼돼지 옥자의 구출…동물복지와 질 좋은 고기 사이 고민이 필요한 때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돼지 옥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 2017). 영화 속 환경운동가 집단인 ‘동물해방전선’은 서울 한복판에서 옥자를 납치했다가 다시 풀어준다. 유전자 조작으로 옥자를 탄생시킨 글로벌기업 미란도그룹의 뉴욕 실험실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 옥자의 귀 아래에 블랙박스를 심은 뒤다. 회사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미란도그룹이 미자를 뉴욕으로 초대해 옥자와 감동적인 재회 이벤트를 여는 순간, 동물해방전선은 미란도그룹이 돼지를 강제로 교배하고 전기충격기로 학대하는 등 비윤리적으로 사육한다고 폭로한다. 소비, 합리와 윤리 사이에서옥자를 보러 광장에 몰려든 소비자들은 미란도그룹을 거세게 비난한다. 당장이라도 미란도가 생산하는 돼지고기의 불매운동에 나설 기세다. 윤리적 소비의 전형이다. 주류경제학에선 사람들이 소비를 결정할 때는 자신의 소득, 상품 가격, 상품의 품질(효용) 등을 주로 고려한다고 본다. 윤리적 소비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는 비싸고 품질이 떨어져도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산다.

소비자의 거센 항의에도 미란도그룹 수장인 낸시는 끄떡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장을 최대한 가동해 돼지고기 생산량을 늘리라고 주문한다.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면 품질 좋고 가격까지 싼 제품을 외면할 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가격이 싸면 사람들은 먹어. 초반 매출이 아주 좋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 소비가 원하는 세상을 만든다영화는 미란도그룹의 돼지고기가 정말 잘 팔렸는지까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이었다면 어떨까. 알 순 없다. 2006년 롯데월드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직후 무료입장 이벤트를 열자 놀이공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안전 사고와 대처 논란에도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과 높은 효용을 택했다. 반면 2013년 ‘갑질’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아직까지 여파를 미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미자는 미란도그룹에 순금으로 값을 치르고 옥자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미자가 구한 건 옥자뿐이다. 다른 돼지들은 아직 거기에 있다. 동물복지가 중요하다고 믿는 소비자가 늘어 불매운동에 성공할 때 다른 돼지들도 자유를 찾을 것이다.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것과 좋은 품질의 고기를 값싸게 제공하는 것.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는 판단의 영역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에게 양질의 동물 단백질을 제공하는 문제 역시 동물 복지와 비교해 결코 가볍지 않다. 투표가 세상을 바꾸듯 소비도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소비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뿐이다. 또다른 논란…넷플릭스에서 먼저 상영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2017년 개봉 당시 화면 속보다 바깥 문제로 더 주목받은 작품이다. 옥자는 한국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온라인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 공개됐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최초의 넷플릭스 제작 영화이기도 하다. 옥자 이전까지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모두 영화관에서 최소 2~3주 동안 먼저 상영된 작품이었다. 영화관 상영을 마친 뒤 인터넷TV(IPTV) 유료 공개 상품이 되고, 이후 가입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상품으로 무료 공개되는 게 기존 영화의 유통 흐름이었다.

넷플릭스는 이 판을 완전히 흔들었다. 영화 개봉 후 부대수입으로만 여겨졌던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관뿐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도 스크린으로 인정해 달라고 나섰다. 영화관이 영화 상영을 독점하는 구조를 깨고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산업 구조의 틀을 깨는 혁신 기업의 등장은 기존 경제주체의 반발을 부른다. 옥자 개봉 당시 국내 스크린 점유율 98%를 차지한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옥자 상영을 거부했다. 칸 영화제에서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옥자를 영화로 볼 것이냐로 논란을 빚었다. 칸 영화제에서 옥자가 상영됐을 땐 관객 야유로 상영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는 이런 현상을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기술혁신은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혁신으로 낡은 것이 파괴되고 새 질서가 생기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는 게 창조적 파괴 이론의 핵심이다. 우버 등 차량공유 서비스와 택시업계 갈등, 에어비앤비와 숙박업계 갈등 역시 기존 산업 구조를 바꾸는 혁신기업 등장으로 생긴 일이다.

기존 산업계 반발에도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변화는 더 앞당겨지는 추세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92년 전통을 깨고 올해는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도 출품하도록 허용했다. 한국 영화 ‘사냥의 시간’은 지난 4월 영화관 개봉 없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최초 공개됐다. 넷플릭스 등 OTT가 투자한 영화가 아닌 작품이 OTT에서만 개봉한 건 사냥의 시간이 처음이다.

나수지 한국경제신문 기자 suji@hankyung.com NIE 포인트① 기술혁신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항상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만 할까.

② 유전자조작(GMO)으로 더 품질 좋고 값싼 고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동물복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보는가.

③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영화관 관객은 급감한 반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은 급증하고 있다는데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