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대표가 기업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다. 비슷한 내용으로 2개의 법안이 2명의 의원 대표 발의로 나와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가 되면서 정부도 입법 실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계를 비롯해 학계의 반대도 만만찮다. 가뜩이나 한국의 노사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이를 노조 쪽으로 더욱 기울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 제도만이 아니라, 최근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이른바 ‘기업규제 3법’으로 기업 옥죄기가 심화되면서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우려까지 나오는 마당에 노조 쪽의 오랜 ‘숙원’을 정부·여당이 다 들어주며 기업을 몰아세우면 투자는 누가 하고, 일자리는 어디서 나올 것이냐는 항변이다. ‘기업 활동 독려를 통한 위기 극복’은 팽개치겠냐는 반발이다. 논란도 많고 기업들이 크게 걱정하는 노동이사제, 지금 도입할 상황인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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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공기업 방만경영 방지와…투명성 제고에 도움노동이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의 주된 근거는 근로자들 경영 참여로 기관운영의 공공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논리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투명한 경영이 가능해지고, 공공기관의 경우 부실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늘 대립적인 한국 노사 관계가 한 차원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까지 있다. 노동이사제를 부분적으로 해본 서울시 산하 지방 공기업의 경험을 끌어들여 ‘현장’의 목소리가 경영진과 공유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영진과 이사회에 현장의 평가, 반응, 지적, 분석 등이 바로 전해지면 보다 나은 경영을 위한 의사결정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가령 대표이사-임원-사외이사 등이 하는 주된 결정에 현장 근로자 목소리가 가감 없이 전해진다면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재계를 비롯해 학계와 언론계가 걱정하는 ‘노조의 경영권 침해 및 경영 점거’는 기우다. 더구나 지금 법으로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은 공공기관에 한해서다. 독일처럼 이 제도를 앞서 도입한 곳에서는 기업의 수익창출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노사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구조를 타파하는 데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 노동조합 등 노동자 대표가 공식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통로가 열리는 것이어서 경영 관련 정보가 공유되고, 주요 결정의 판단 근거가 노사 간에 공유되는 게 나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것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사건건 대립적인 노사관계도 개선시키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에 기반하고 있다. 노조가 경영에 관여하고 나아가 주체가 된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수밖에 없지만, 이 문제도 함께 논의하면 된다. 노조의 기득권이나 노조 이기주의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시행도 안 해본 상황에서는 성급한 걱정이다. [반대] 노조의 경영권 침해 우려…'노동개혁'이 더 급하다주주가 아닌 노동조합의 대표나 노조 추천 이사가 회사의 주요 의결기구인 이사회에 들어가면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법에는 노동이사를 ‘상임’으로 두도록 했는데 이렇게 되면 기업(경영진)으로서는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노동이사제 찬성자들은 독일 사례를 들며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 제도를 적극 도입한 독일에서조차 노동이사는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법률 검토 등 제한적 역할만 수행한다. 노사갈등이 특히 심한 한국에서는 노동이사가 노사 간의 협상 안건에 이사회를 끌어들일 수도 있고, 경영진의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거나 노골적인 방해놓기를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하루하루가 ‘생존 전쟁’인 기업에 이렇게 내부 갈등요인을 새로 덧붙일 이유가 무엇인가.

더구나 기업이 원하는 노동개혁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노사관계를 계속 노조 쪽으로만 기울게 할 경우 기업의 경쟁력 저하는 물론이고, 이런 고용·노동환경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공기업의 방만경영 등에 대한 지적도 있고 경영개선 및 구조개선의 필요성도 있지만, 노동이사제 도입이 그 해법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노사 간 야합’ 행위를 유도하면서 공기업에서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중간단계로 이사회에 노조대표가 발언권 없이 들어가는 ‘근로자 참관제’ 같은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며 도입했던 사외이사제는 어떻게 됐나. 있는 제도라도 제대로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미증유의 위기라며 기업을 계속 궁지로만 몰아세우면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적극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현실도 감안돼야 한다. √ 생각하기 - 국제평가와 민간기업에 미칠 영향도 감안해야
[시사이슈 찬반토론] 공기업 노동이사제 추진, 지금 필요한가
두 가지 주요한 관점이 있다. 노동이사제만 떼어놓기보다 고용·노동 이슈라는 큰 틀에서 보기, 국내의 노사관계 힘겨루기 차원과 함께 국제 시각까지 함께 보기다. 해묵은 숙제인 노동개혁 차원에서 본다면 노조 쪽에서 양보하며 내놓아야 할 노동기득권도 적지 않다. 급등한 최저임금, 근로 형태 등에 대한 정부 규제, 파업에 대한 사측의 대항권 보완 등도 그래서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최근 KB금융지주에서 노조추천 이사 선임 안건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에 의해 가로막혔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회에서 노동이사제를 서두르고 있지만 KB금융지주 주식의 65%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의 결정을 좌우하는 ISS의 반대는 이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보여준다. 노동개혁과 병행하라는 의미가 된다. 경제위기 와중에 정부·여당이 노조 편만 들지 않도록 ‘중립 촉구’ 측면도 있다. 노동단체가 민간 기업으로 확대하려 할 경우 노사 간 갈등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도 인식해둘 만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