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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80호 2020년 10월 26일

Cover Story

이윤창출 → 사회적 책임 → ESG…기업의 책임도 진화한다


기업들은 오랜 세월 이익과 효율을 강조했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경영자는 법률이 요구하는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윤 극대화는 선이다’라는 주장은 기업 경영의 원칙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부 기업의 위험하고 불법적 행위는 때로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미국 화학기업 듀폰은 1931년 ‘기적의 냉매’라며 프레온이라는 냉각제를 개발해 에어컨 등에 사용했지만, 프레온이 대기의 오존층을 파괴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이 드러나 국제적인 퇴출 운동이 벌어졌다. 두산전자는 1991년 낙동강에 화학물질인 페놀을 방류해 식수원을 오염시켰다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기업도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다.
2000년대 본격 도입
사실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600년대 후반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한족 상인들이 하오시(好施)라는 자선활동을 통해 민심을 얻기 위해 힘썼고, 18세기 조선의 상인 김만덕은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나눠줘 제주도민들을 구했다.

현대적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개념을 정립한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 하워드 보웬이다. 그는 1950년대부터 기업이 이윤 추구 외에 CSR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가 제프 밸린저는 인도네시아 나이키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면서 CSR을 기업 평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념이 나온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2004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에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20여 개 금융회사는 공동 연구를 통해 ESG라는 요소를 활용해 투자 대상 기업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내용이 2006년 ‘유엔 책임투자 원칙’에 반영됐다.
구체적 목표 제시하고 수치화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 기부나 봉사활동, 문화예술 후원 등 자발적 돕기 수준이었다면 ESG는 기업의 행동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화하고 가능한 수준에서 지표화한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환경 분야는 청정기술의 사용이나 탄소배출 저감 활동, 환경오염 및 유독물질 배출 차단, 천연자원 활용 등이 요구된다. 사회 분야에서는 고용·양성평등. 인권 존중, 직원 건강과 안전 보호, 제조물의 안전과 품질 확보, 데이터 보안, 공급망 관리 등이 중시된다. 지배구조는 이사회 구성이나 임원 보수의 적절성, 준법경영 등 얼마나 기업을 투명하게 운영하는지를 따진다.

기업들은 생산과 판매, 자금 운용 등 경영 전반에 ESG를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애플 구글 월마트 등은 2050년 이전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한다는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고 세계적으로 263개사가 동참하기로 했다. SK그룹은 경영에서 ESG 목표를 설정하고 그 평가 기준 마련과 성과 측정 등을 진행하고 있다. 매출과 이익이 아무리 많아도 ESG 점수가 낮으면 높은 인사고과를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글로벌 규범화로 안 지키면 ‘도태’
ESG는 나아가 글로벌 규범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기업들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투자자와 소비자로부터 멀어져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에서 ESG를 기업경영실적 보고서인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ESG를 지키지 않는 기업은 유럽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아마존 등은 ESG를 준수하는 곳과 거래를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금융사들도 ESG를 주요한 투자지표로 삼고 있다. 세계적으로 ESG 관련 투자 자산 규모가 2012년 13조3000억달러에서 2018년 30조7000억달러로 커졌다. 국민연금은 전체 운용자산(약 752조원)의 4% 수준인 ESG 관련 투자를 내년에 59%까지 늘리기로 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2018년 기업 지배구조 불투명 등을 이유로 투자한 기업 가운데 16.48%의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한국경제신문이 시장조사업체 입소스코리아와 최근 시행한 소비자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3%는 “제품을 구매할 때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고, 66%는 “다소 비싸더라도 신뢰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 ‘공급이 넘치는 시대’에는 ESG가 지속가능한 기업의 잣대가 되고 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일까 아니면 안 해도 무방한 기업의 자발적 선택일까.

② 환경 보호와 근로자 안전 강화 등으로 생산비용이 늘어나 제품 가격이 상승한다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까.

③ ESG는 기술력이 앞서고 경영 능력을 선진화한 글로벌 기업들이 조건 충족이 어려운 후발기업이나 개발도상국 기업들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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