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서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자고 나면 튀어나오는 신조어로
계층 간, 세대 간 '소통'을 걱정해야 할 판이지만,
북에서는 폐쇄적 체제 특성으로
말글 발달에서도 지체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북한의 극존칭 어투 '~께서와'
지난 호에 이어 북한말 가운데 특이한 어법을 좀 더 살펴보자. “김정은 동지께서와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에 상정된 의제들에 대하여 견해 일치를 보시고 앞으로 수시로 만나….” 2018년 4월 2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북한 정상 간의 ‘판문점선언’을 전문(全文)과 함께 그 의미를 상세하게 보도했다.체제적 특성이 우리말 용법에 영향 끼쳐주목할 부분은 ‘김정은 동지께서와 문재인 대통령은…’에서 드러나는 어색한 우리말 용법이다. 우리 관점에서는 비문이다. 북한의 유일 영도체제가 국어 어법에 영향을 끼친 모습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북에서는 모든 출판물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눈여겨볼 것은 이들을 나타낼 때는 언제나 극존칭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께서는~’ 하는 식이다. ‘와’는 대등한 낱말을 연결하는 조사다. 존칭 조사를 붙일 때는 ‘A와 B께서는’과 같이 뒷말에만 붙이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다. 그러나 북에서는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해 항상 극존칭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어투라도 써야만 한다. 체제적 특수성이 우리말 표현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언론이나 교과서 등 출판물을 분석해 보면 남한에 비해 전반적으로 문장 구성과 표현 기법이 뒤처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에서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자고 나면 튀어나오는 신조어로 계층 간, 세대 간 ‘소통’을 걱정해야 할 판이지만, 북에서는 폐쇄적 체제 특성으로 말글 발달에서도 지체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중복 표현 등 세련되지 않은 문체 그대로그런 까닭에서인지는 몰라도 남에서는 비문, 악문으로 보아 경계하는 문구를 개의치 않고 쓰기도 한다. 정책적인 국어 순화 작업의 한편으론 어색한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든지, 같은 형태의 어미나 단어를 잇달아 중복해 쓴다든지, 관형격 조사 ‘의’의 사용을 남발한다든지 하는 게 그렇다.

예를 들면, ‘매개 나라에서…’ 같은 게 대표적이다. 우리는 ‘나라마다’ 또는 ‘각 나라에서’ 정도로 쓰는 말이다. 북에서는 ‘~마다’(낱낱이 모두)에 해당하는 한자어 ‘매(每)’를 많이 사용한다. ‘매개(每個)’ 역시 ‘한 개 한 개, 또는 낱낱’을 뜻하는 말로 남에선 잘 쓰지 않는 말이다. ‘면적과 인구수도 서로 각이하다’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르다’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이 지역은 덥고 습윤한 기후와 기름진 땅에 의거하여’ 같은 표현도 낯설다. 이 문장은 ‘이 지역은 기후가 덥고 습윤하며 땅이 기름져’ 정도로 해야 우리말답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승냥이, 범 등 짐승류와 … 원앙새를 비롯한 새류와 … 개구리와 같은 동물들’에서는 조사 ‘와’를 잇따라 겹쳐 쓰는 등 세련되지 못한 문체를 보인다. 서술어에 ‘-되다’형의 표현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남에서 ‘(무엇무엇)이다’가 올 자리에 북에선 ‘~로 되고 있다’란 표현이 쓰인다. 가령 북한 교과서에는 ‘선인장의 원산지로 되고 있다’ 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는 ‘원산지이다’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곳이다. 이런 특이한 표현은 신문에서도 확인된다. 남에선 ‘OO팀이 결승에 진출했다’라고 할 것을 북에선 ‘~진출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게 예삿일이다. ‘대회가 (언제까지) 열린다’라고 할 것을 ‘(언제까지) 진행되게 된다’라고 쓴다. ‘(대회가)진행된다’도 어색한데 ‘진행되게 된다’라고 하니 우리 눈으로 보면 매우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