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코로나 임팩트…새로운 세계가 온다

제품 생산 비용 줄이려
중국에 부품 의존하다
코로나 사태에 속수무책
기업들 '본국 귀환' 가속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초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세계 경제 정세가 매우 복잡해졌다”며 “장기간에 걸쳐 외부 환경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공급망 재구축 정책이 시 주석을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약 20년간 글로벌화에 힘입어 급성장한 중국 성장 모델의 근간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일 “돌아오는 기업에 보조금”

공급망 재구축은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 경제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한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도록 유도)’ 정책이다. 중국에 있는 자국 기업들의 공장을 일본으로 되돌리는 유턴 기업을 대상으로 이전 비용의 3분의 2까지 정부가 대주는 게 핵심이다. 지난달 중순 일본의 가전 전문 중견기업 아이리스오야마가 공급망 재구축 1호로 중국에서 생산하던 마스크를 국내 공장으로 이전했다. 이 회사는 오는 8월부터 매달 1억5000만 장의 마스크를 양산할 계획이다.

리쇼어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다.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무기 삼아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 사슬을 끊으려고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중국의 ‘세계의 공장’ 역할이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다.

중국 중심 공급망을 뿌리째 뒤흔든 건 미국의 관세 폭탄이 아니라 코로나19였다. 여러 경제대국이 코로나19 발병에 따른 중국발 부품 공급 차질로 호된 경험을 했다. 세계 제조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공장이 멈춰서자 지난 2월 글로벌 노트북 출하량은 기존 전망치 대비 반 토막 났다. 1분기 스마트폰 생산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거점을 둔 다국적 기업 중 본국 회귀를 검토한 곳이 80%에 달했다. 일본이 ‘중국 탈출’에 더욱 적극적인 이유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 중국 의존도가 훨씬 높아서다. 작년 말 일본의 중국산 소재·부품 의존도는 21.1%로 집계됐다. 프랑스(5.1%) 영국(5.9%)의 네 배에 달하는 수치다.

자국우선주의 강화

주요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적극 추진하는 건 기업 이전만으로도 내수를 크게 활성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유턴 촉진 기관인 리쇼어링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년 후 9년 동안 총 3327개 기업이 미국으로 회귀했다. 연평균 369개꼴이다. 미국의 아시아 지역 수입품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67%에서 2019년 6월 말 56%로 감소했다. 미국 복귀 기업들이 지난 9년간 창출한 일자리는 총 34만7236개에 달했다. 애플 한 곳이 작년 상반기까지 리쇼어링을 통해 미국에 만든 일자리만 2만2200개로 집계됐다.

일본 역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한 축으로 리쇼어링을 추진해왔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자동차 3사 및 캐논 등 전자기업들이 이미 일본으로 공장을 옮겼다. 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 팩토리 구축 및 연구개발(R&D) 보조금 지원을 제시하고 있는 독일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글로벌 기업 아디다스는 23년 만인 2016년 본국으로 돌아와 신발을 생산하고 있다.

분산된 공급망 구축 필요 커져

기업들의 공급망관리(SCM) 분야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중국 등 저비용 국가에 대규모 공장을 세워 부품 등을 조달했지만 앞으로는 분산된 공급망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폰 생산의 90% 이상을 중국에 맡겼던 애플은 위탁생산 시설 중 상당 부분을 중국 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공개된 세계무역기구(WTO)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80여 개국이 자국 보호를 목적으로 의료장비의 반출을 금지하는 등 새로운 수출제한 조치를 도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동제한과 함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인 3M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마스크가 수출 통제 대상에 묶인 걸 바라만 봐야 했다.

공급망 분산과 함께 부품 조달, 생산, 유통 등에서 ‘지역 블록화’가 추진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서유럽 동유럽 등 특정 지역 내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는 블록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맥킨지는 “부품 구매와 생산이 소비자를 향해 더 가까이 이동하면서 ‘공급사슬 세계화’의 시기는 저물 것”으로 예측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도 “각국의 경계선이 약간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소비 지역에서 직접 조립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정영효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hugh@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베트남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중국에서 생산하며 미국에서 판매하는 등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②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이동과 수출을 제한하는 등 신(新)보호무역주의가 지속될까.
③ 수출주도경제인 한국이 세계 각국의 자국우선주의에 대응하는 방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