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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가 지난해 10월 산시성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전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가 지난해 10월 산시성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전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 보복이 한창이던 2018년 4월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우한에 있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공장을 전격 방문했다. YMTC는 칭화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국유 반도체 그룹 ‘칭화유니’의 자회사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起·우뚝 일어섬)’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시 주석은 이날 중국 반도체업계 종사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반도체 심장론’을 설파했다. 그는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약하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하다고 할 수 없다”며 ‘2025년까지 반도체 기술 자립도 70% 달성’을 주문했다. 중국 정부 예산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전폭적인 지원 방침도 밝혔다.

프리미엄 낸드 제품 연말 생산

170조 투자 목표…중국 '반도체 굴기' 재시동
중국의 기술력은 이후 2년간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 주석이 찾았던 YMTC는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낸드플래시 반도체로 평가받는 ‘128단 3D QLC’ 개발과 테스트 성공 사실을 지난달 14일 전격 공개했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기술 격차가 1년 정도로 좁혀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YMTC가 개발 사실을 공개한 ‘128단 3D QLC’ 낸드플래시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업계를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지난해 하반기에 양산에 성공한 ‘프리미엄’ 제품이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반도체다. 주로 스마트폰, 노트북 등의 저장장치로 활용된다. 단수(반도체 셀을 쌓아올린 층수)를 64단에서 96단, 128단으로 높이고, 한 셀의 저장용량이 MLC(2bit) TLC(3bit) QLC(4bit) 순으로 커질수록 뛰어난 성능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평가된다. YMTC는 올 연말께 본격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메모리반도체의 다른 축인 D램 분야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2월 중국 업체 중 처음으로 D램을 판매했다고 밝힌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대표적이다. CXMT는 최근 첨단 제품 개발을 위해 한국과 대만 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고 인재 확보에 나섰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퇴직을 앞둔 고참 직원들이 중국 업체들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 키워 한국 업체 맹추격

170조 투자 목표…중국 '반도체 굴기' 재시동
1~2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국내 업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업체들이 실제 제품을 공개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YMTC의 신제품 전격 공개도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공개한 ‘엑스트래킹(Xtracking)’이란 기술은 반도체 셀과 주변부 회로(페리)를 다른 웨이퍼에서 생산해 붙이는 기술이다. 한 웨이퍼에서 생산하는 방법을 주로 썼던 국내 업체와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기술은 최근엔 미국 마이크론과 국내 업체들도 활용하고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중국의 낸드플래시 기술은 한국 기업들에 상당히 위협적인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한국 기업들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 로드맵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업체들은 D램, 낸드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로 영역을 넓히며 삼성전자와 같은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이 대표적이다. 칭화유니는 메모리반도체 YMTC뿐만 아니라 팹리스 ‘유니SOC’ 등을 통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5세대(5G) 이동통신 통합칩셋(SoC) 개발에도 성공했다.

화웨이 산하 팹리스 하이실리콘과 파운드리 업체 SMIC의 경쟁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기업의 주력 제품 점유율은 글로벌 시장 4~5위 수준으로 높아졌다.

비메모리 분야 한국 턱밑까지

전문가들은 중국 내 수요가 충분하다는 점을 들어 중국 반도체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데이터센터를 늘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반도체를 사들이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중국 반도체 설계 사관학교로 유명한 화웨이 등이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잠재 수요처로 꼽힌다.

기술 저변도 만만찮다는 지적이다. 반도체와 제조 방식이 비슷한 LED(발광다이오드)나 태양광 웨이퍼 분야는 이미 중국 업체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중국 시장 점유율이 30%에 이르는 LED 업체 산안광뎬이나 웨이퍼 시장의 강자로 꼽히는 룽지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리서치본부장은 “중국을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업체들이 주문한 IT 기기를 생산하는 하청공장으로 봐선 곤란하다”며 “낸드플래시와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송형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hjs@hankyung.com

NIE 포인트

①반도체가 ‘산업의 쌀’로 불리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②중국이 ‘세계의 하청공장’에서 벗어나 기술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까.
③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다른 나라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초격차 전략’을 유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