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4차 산업혁명과 협업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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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한 만큼만 내세요!’ 독일의 업소용 식기세척기 업체 빈터할터(Winterhalter)의 홍보 문구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기업이 자신의 제품에 대한 고객의 사용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사 제품을 이전과 다른 측면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유형의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 측면에서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이라고 한다.

사물인터넷으로 시작되는 서비타이제이션

서비타이제이션이란 모든 제품의 서비스화를 의미한다. 제품에 사물인터넷이 부착돼 고객이 제품을 어떤 빈도로, 얼마나 사용하는지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이뤄지면서 유형의 제품에서 무형의 서비스 창출이 가능해졌다. 식기세척기 업체 빈터할터가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설거지’라는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이유이다. 식기세척기에 부착된 사물인터넷이라는 ‘눈’과 ‘귀’가 고객의 사용 패턴에 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해준다. 고객은 온라인으로 얼마나 설거지를 할지 결정하고, 해당 빈도만큼만 결제해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제조사는 제품을 판매한 이후에도 고객과 지속적인 접점을 형성하며, 고객이 경쟁사 제품에 눈을 돌릴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안정적인 수입으로 이어지고, 고객 역시 초기에 목돈을 들여 식기세척기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 제품을 사용할 때만 비용을 내므로 보다 적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 서비타이제이션의 핵심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의미는 기업이 고객의 경험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고객이 실물을 매개로 형성하던 접점이 사물인터넷을 통한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 가능해지자 디지털 세계로 확장된다. 농기계 및 중장비 제조회사 존디어의 전략에서 이런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농업은 기후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분야이다. 존디어는 미국 농기계 시장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수익은 계속해서 급감해왔다. 이들은 농기계 판매 수입의 감소를 농기계에 부착된 사물인터넷을 통해 얻은 데이터의 판매로 보완하고 있다. 전 세계에 설치된 20만 대가 넘는 존디어의 센서들은 작물의 데이터를 중앙 서버로 전송하고, 중앙 서버에서는 다시 데이터를 분류하고 분석해 농업 현장에 있는 농기계에 해당 데이터를 전송한다. 이 데이터는 농업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고객의 농장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상청의 날씨 데이터와 결합해 물과 비료가 가장 적절하게 공급될 시기까지 예측한다. 농기구를 매년 구입할 필요는 없지만, 농기구로부터 수집되고 분석된 데이터는 해마다 다시 구입할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기후 환경으로 인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료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공유

제품에서 새로운 서비스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작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실시간 데이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거나,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없다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찾아낼 수 없다. 한편 《초연결》의 저자 데이비드 스티븐슨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공유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세상은 제로섬(zerosum)이 아니다. 정보를 독점하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초연결 시대에는 ‘개방’만이 큰 이익을 낼 수 있다. 공유될수록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사항과 이를 해결할 방법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타이제이션으로 높아진 불확실성 역시 공유와 개방의 가치에 힘을 실어준다. 분업화와 전문화는 문제가 명확히 규명될 때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로 경쟁의 구도가 바뀌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공유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해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이 불확실하다는 표현은 상투적인 것이 됐지만, 불확실성에 맞서기 위해 많은 것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제품 대신 서비스를 팔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전략부터 시작해야 한다. 원대한 계획보다 작은 영역일지라도 변화를 실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업도, 정부도, 개인도 기존의 성공방식을 한 번에 모두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조급함 대신 디지털 경제의 가치는 언제나 네트워크 효과, 네트워크의 가치가 이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메트칼프의 법칙’ 등과 같은 외부효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서비타이제이션은 디지털화를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의 한 단면일 뿐이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서 디지털화를 넘어 디지털 전환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 포인트

IoT 데이터 개방과 공유는
서비타이제이션의 필수조건
실현가능한 부분 집중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