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658호 2019년 12월 23일

대입전략

[수학이 세상을 바꾼다] 대학 수학도 토론 수업…전문가들 "AI원천기술엔 필수"

서울교통공사는 공조기에 이상이 생기면 평소와 다른 전류값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수리연)에 전류값 데이터에 기반한 ‘고장예지’ 시스템을 개발해줄 것을 의뢰했다. 딥러닝의 힘을 빌리면 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이에 따라 수리연은 올 상반기 환기공조시스템 이상 여부를 사전에 감지해 알려주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해 공사측에 건네줬다.

수학으로 미세먼지도 잡는다

수리연 연구진은 공조기와 모터를 연결하는 V벨트와 베어링이 공조기 정상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정 역의 평소 전류값과 V벨트 또는 베어링이 교체된 날짜를 전후한 전류값 데이터를 수집했다. 5호선 장한평역 한 대합실에서 공조기 베어링 교체 전 전류값 데이터(비정상값) 1215개와 교체 후(정상값) 1048개를 확보해 기계학습을 반복하도록 했다. 2·7호선 건대입구역은 2개 승강장의 공조기 V벨트 교체 전 전류값 743개와 교체 후 867개를 이용해 기계학습을 시켰다. 이런 과정만 1년여가 걸렸다. 알고리즘 설계는 딥러닝 기법인 CNN(컨볼루션신경망)을 활용했다.

지하철 공조기 고장예지는 성공적이었다. 김포공항 목동 마장 중곡 등 12개 지하철역 공조기에 이 AI를 적용한 결과 V벨트와 베어링 교체 시점을 판단하는 정확도가 평균 95%에 달했다. 수리연은 중소업체 디에이피와 협력해 역사 내 미세먼지 빅데이터를 분석, 환기시스템 최적 가동 시점을 판단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모두 수학의 힘이 바탕이 된 것이다.

‘산업수학 워크숍’ 기업에 인기

지하철 공조기에 관한 입소문은 빨랐다. 현대엘리베이터·현대백화점, SK E&S 등 대기업부터 한국에스엠씨, 도레이첨단소재, 데이터세이브, 큐티티 등 중견·중소기업이 경영상 애로를 수학으로 해결해달라며 잇따라 수리연을 찾았다. 기업체의 1 대 1 의뢰 외에 ‘수학 집단지성’으로 산업문제를 해결하는 시도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 수학 전문가 150여 명이 모여 2박3일간 난상토론을 한 뒤 후속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내놓는 수리연의 ‘산업수학 워크숍’이다. 도레이첨단소재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폐수 재활용 용도로 만든 나노필터 신제품의 ‘성능 검증’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제를 담당한 정준화 수리연 연구원은 “미분방정식을 이용해 최근 검증 모델을 완성했고 도레이첨단소재 측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가벼운 위성 제조법’을 수학에서 찾고 있다. 저궤도 위성은 우주의 원자산소(ATOX)에 의해 부식되기 때문에 이를 견딜 수 있게 설계한다. 그동안엔 ‘최악’의 우주 환경을 감안해 무차별적 고분자 코팅을 했고, 이는 위성 제작 비용 및 무게 증가로 이어졌다. 수리연은 태양활동지수, 지구 자기활동, 궤도정보 등을 변수로 원자산소 부식도를 예측하는 수학 모델을 개발해 저궤도 위성의 최적 무게를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올 첫 토론수업 도입

서울대 수리과학부는 올해 사상 최초로 토론수업을 도입했다. 일방적 판서 강의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물리천문학부, 통계학과 학생들도 함께 이수하는 ‘미적분학2’ 등 총 12개 강의를 개설했다. 강의명만 보면 전공 같지만, 사실 조각난 고교 수학을 감안해 기초지식을 다시 쌓는 과정이다. 오병권 서울대 수리과학부 학부장은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의 기본인 선형대수(행렬·벡터)를 하나도 모르는 학생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데 커리큘럼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 이전의 수학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전문가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코딩으로 수학하자”

이상구 한국수학교육학회장(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은 ‘코딩수학’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파이썬, R 등 프로그래밍 언어와 수학을 동시에 배우는 선진 수학 교육기법이다. 예를 들어 적분을 계산할 때 함수의 그래프와 축 간 넓이를 무한대로 쪼개 합하는 ‘구분구적법’의 원리를 알았으면, 이후 복잡한 계산은 코딩에 맡기는 것이다. 이 회장은 수업시간에 기본 코드만 공개한 뒤 나머지는 학생들이 토론하며 자유롭게 수업 내용과 코딩을 연결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이 회장은 “복잡한 수식과 문제만 강요하면 학생들은 곧 포기하고 중요한 개념마저 잊어버린다”며 “차라리 그 시간에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교 수학에서 행렬이 완전히 사라지고, 벡터도 반쪽으로 쪼개져 향후 수능에서 누락되는 부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AI 전문가인 강명주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사방에서 AI를 논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건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성과를 내는 AI 원천기술을 구현하려면 선형대수, 수치 해석 등 핵심 수학에 대한 집중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IT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