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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46호 2019년 9월 30일

다시 읽는 명저

[다시 읽는 명저] "인터넷이 되레 불통과 극단주의 부추겨 음모론 확산시킨다"…보고 싶은 것만 보고,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성'' 비판

“동질적 집단은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광신집단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을 외부와 격리시키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정보를 불신하게 된다. 토론을 거듭할수록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성(確證偏向性)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Going to Extremes)》에서 집단사고의 위험을 경고했다. 끼리끼리 모여 의견을 나누면 여러 의견을 절충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기보다 오히려 더 극단적인 입장을 갖는 경향이 있어서다. “실험 결과 인종적 편견이 있는 백인들은 토론을 거친 뒤 인종적 편견이 심해졌다. 구성원의 교양 수준은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연방판사들조차도 비슷한 성향끼리 재판부를 구성할 때 더 편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폐쇄성이 키우는 괴담과 증오

법학자이자 인간행동 연구 분야 석학인 선스타인은 《루머(On Rumours)》 등을 통해 집단사고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분석했다. 국내에서 그는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Nudge)》를 함께 쓴 공동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선스타인은 소통 창구인 인터넷이 되레 불통과 극단주의를 부추겨 음모론과 증오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과 가장 잘 들어맞는 토론방을 검색하고 선택한다.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토론방은 떠난다. 비슷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고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선스타인은 이런 현상을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라고 규정했다. 1930년대 파시즘, 1990년대 이후 테러리즘, 사이비 종교 등을 집단 극단화 사례로 꼽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주기적인 부동산 가격 폭락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절대 다수의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들이 경제 낙관론과 부동산 불패론을 서로 키우는 바람에 닥쳐올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스타인은 ‘확증(確證)의 힘’과 ‘평판(評判)의 압력’ 등을 집단 극단화의 원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면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굳히곤(확증하곤) 한다. 무엇이 옳은지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집단 의견에 따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면서 ‘편향동화(偏向同化)’가 발생한다. 다른 의견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과 같은 주장은 현명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결국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폭포 효과(social cascades)’는 처음에는 소수에 불과하던 강경론자의 믿음과 주장이 극단화 마지막 단계에서 다수에게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이다. “사회적 폭포 효과를 통해 생겨난 믿음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2001년 9·11테러가 미국과 유대인의 음모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설명을 내놔도 괴담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와 2010년 천안함 폭침이 그런 경우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린다는 ‘뇌송송 구멍탁’ 괴담에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일부 세력은 아직도 ‘천안함 폭침은 한국의 자작극’ ‘천안함 침몰 원인은 잠수함과의 충돌 때문’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이종교배' 조직이 극단화 방지

선스타인은 집단 극단화 여부를 잣대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링컨 행정부를 분석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집단 극단화가 원인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동질성이 강한, 이른바 ‘라이벌 아닌 사람들의 팀(team of unrivals)’으로 구성됐다. 그곳에서 반대 의견은 충성심 부족으로 간주됐다. 전쟁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살상무기 확보’가 사실이 아니라는 첩보들이 있었지만 무시됐다. 특정 사고를 공유하는 집단이 의사 결정을 좌우할 때 야기되는 정책 실패를 그대로 보여줬다.”

선스타인은 링컨 대통령의 성공을 건강한 ‘라이벌들의 팀(team of rivals)’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링컨은 자기 생각에 이의를 달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검토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조직 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집단 극단화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정적(政敵)까지 포용한 링컨의 리더십은 이념과 계층 등 갖은 갈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김태철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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