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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발표도 사실과 달라…"北 의식한 조율" 지적도
지난 15일 군경의 해상 경계를 피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북한 어선.
지난 15일 군경의 해상 경계를 피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북한 어선.
지난달 15일 새벽 6시20분께 북한 선원 4명이 나무로 된 한 어선을 강원 삼척항 방파제에 댔다. 이 중 2명은 육지로 올라왔다. 이들은 동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부둣가를 산책하던 주민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존재를 아예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어선 ‘대기 귀순’으로 불리는 이번 사태는 군·경의 감시망이 얼마나 쉽게 뚫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군은 경계 태세에 구멍이 생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방부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브리핑 때마다 모호한 수사를 써가며 경계 작전에 문제가 없었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일각에선 대화 국면에 들어선 남북 관계를 고려해 정부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아무런 제지 없이 남하한 북한 주민들

북한 선원 탄 목선 삼척항 올 때까지 눈치도 못챈 군·경
군당국에 따르면 북한 선박은 지난달 9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항했다. 이튿날에는 동해 NLL 북방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군에 합류해 위장 조업을 했다. 같은달 12일 오후 9시께 NLL을 넘었다. 14일에는 삼척 동쪽 방향으로 이동했다가 오후 9시께부터 엔진을 끄고 한동안 대기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일출 이후 삼척항으로 접근했다.

북한 선원들을 발견한 건 15일 오전 6시50분께 산책을 나온 주민이었다. 차림새를 수상하게 여긴 신고자는 이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북한에서 왔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112에 신고했다. 북한 선원 중 1명은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군 조사 결과 북한 선원 4명 모두 민간인으로 1차 확인됐지만 추가 신문이 진행 중이다. 군 관계자는 “4명 중 2명은 최초부터 귀순 의도를 갖고 출발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군의 모순된 설명이 의혹 키워

정부가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커지는 것은 모순된 설명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서다. 국방부는 첫 브리핑 당시 어선의 발견 위치를 ‘삼척항 인근’이라고 표현했다. “파고가 높은 상황에서 배가 해류와 함께 떠내려와 식별하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해상·해안 경계 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 뒤 밝혀진 사실은 이와 다르다. 북한 선박은 NLL을 넘은 12일부터 사흘간 아무런 제지 없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해경은 신고를 접수한 당일 곧바로 ‘자체 기동을 통해 방파제에 어선이 들어왔다’고 청와대와 합참에 보고했다. 어선 발견 당일 파고는 0.5m로 잔잔한 편이었다고도 전달했다. 국방부가 자세한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는데도 브리핑에서 잘못된 정보를 발표한 것이다.

현역 해군 대령인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A행정관이 국방부 브리핑 현장에 여러 차례 있었던 것도 국방부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행정관은 국방부의 잘못된 설명을 듣고도 바로잡지 않았다.

“정부, 남북한 관계 영향 의식했을 것”

정부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입항 귀순 당시) 보도가 나갔으면 안 됐다”며 “만일 4명이 다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왔다면 그것이 보도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굉장히 경색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일부는 북한 선원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힌 지 하루 만에 북측에 송환 통보를 했다. 역시 정부가 북한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1주일가량 대공 용의점을 조사한 뒤 송환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조사 다음날 북측에 송환 통보를 하는 건 너무 이르다”고 평가했다.

사건 직후 “경계 태세에는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인 군당국 대처가 미흡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북한 소형 목선이 동해 삼척항에서 발견되기 나흘 전 박한기 합참의장은 6시간가량 동해안 경계를 담당하는 육군 8군단에 머물며 경계작전 실태를 점검했다. 하지만 박 의장이 다녀간 다음날 오후 9시 북한 목선은 NLL을 넘어섰다.

북한 목선이 NLL을 넘었을 당시 우리 군은 평소보다 군함과 해상초계기, 해상작전 헬기를 더 많이 투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NIE 포인트

북한 어선이 강원 삼척항에 내려와 우리 주민에게 말을 걸기까지 군과 경찰은 왜 알지 못했는지 알아보자.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정부가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토론해보자. 정부의 모순된 사건 설명 이유도 논의해보자.

임락근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