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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36호 2019년 6월 10일

경제사 이야기

김유신이 ‘미래의 왕’ 김춘추와 누이를 결혼시킨 일화…삼국사기·삼국유사·화랑세기 필사본 내용이 왜 다를까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 (후일의 무열왕)가 공차기를 하다가 유신이 춘추의 옷끈을 밟아 떨어뜨렸다. 유신이 가까운 자기 집으로 춘추를 데려가 큰 누이 보희에게 춘추의 옷끈을 꿰매라고 했다. 보희가 무슨 일이 있어 하지 못하고 작은 누이 문희가 대신했는데, 문희의 자태가 아름다웠다. 춘추가 문희를 좋아해 혼인을 청했고 드디어 결혼했다. 아이를 낳으니 곧 후일의 문무왕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

이 이야기가 1280년경의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도입부는 같다. 유신이 보희에게 춘추의 옷을 꿰매라고 명하니 보희가 하찮은 일을 시킨다고 하면서 사양했다. 고본(古本)에는 병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유신이 문희에게 명하니 문희가 따랐다. 이후 춘추와 문희가 사귀었는데 문희가 임신을 했다. 유신이 남편도 없이 임신했다고 크게 성을 내며 문희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소문을 냈다. 어느 날 선덕여왕이 남산에 놀러 가기를 기다렸다가 유신이 뜰에다 장작을 쌓고 불을 붙여 연기를 피웠다. 여왕이 무슨 연기인지 좌우에 물어 전후 사정을 알게 됐다. 여왕이 춘추에게 “네 소행이니 빨리 가서 구하라”고 했다. 춘추가 왕명을 전하고 문희를 구한 다음 결혼을 했다.

8세기 화랑세기 이야기

《화랑세기(花郞世紀)》로 추정되는 원고가 있다. 이 원고에는 위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유신이 보희에게 춘추의 옷을 꿰매라고 시켰으나 병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문희가 대신했는데, 유신이 자리를 피해줬다. 춘추와 문희가 사랑을 나눠 문희가 임신을 했다. 춘추에게는 보량이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이에 춘추가 문희를 받아들이지 하고 비밀로 했다. 이에 유신이 마당에 장작을 쌓고 누이를 태워죽이려 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마침 선덕공주가 남산에서 놀다가 연기의 사연을 물으니 좌우가 사실대로 고했다. 공주가 춘추에게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하지 않느냐”고 했다. 춘추가 가서 문희를 구했다. 드디어 포사(鮑祠)에서 혼례를 올렸다. 얼마 있지 않아 보량이 아이를 낳다가 죽자 문희가 정궁(正宮)이 됐다. 이 세 가지 이야기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원초적인가. 나는 셋째라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춘추와 문희를 결혼시키고자 했던 유신의 계략은 셋째 이야기에서 비로소 확연하게 설명된다. 사건의 연도를 헤아리면 남산에 올라간 사람은 선덕여왕이 아니라 선덕공주였다. 그 점도 셋째가 원작임을 증빙하고 있다. 첫째와 둘째는 세월이 오래 흐름에 따라 셋째가 축약되거나 변질된 것이다.

화랑세기는 진본 없이 ‘필사본’만 전해져

《화랑세기》는 8세기 초 김대문(金大問)이 지은 책이다. 고려시대까지는 전해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편찬자도 참고했다. 이후 언젠가 그 책은 자취를 감췄다. 1995년 《화랑세기》로 추정되는 것이 박창화(朴昌和, 1889∼1962)란 사람이 원고지에 필사한 형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창화는 1923년 이후 일본에 거주했으며, 1933∼1944년 일본 궁내성 도서료(圖書寮)의 직원으로 근무했다. 박창화는 궁내성 도서료의 판심이 인쇄된 원고지에다 《화랑세기》를 필사했다. 이하 그 원고를 《필사본 화랑세기》라고 부른다. 박창화는 그것의 출처가 어딘지, 언제 필사한 것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필사본 화랑세기》가 공개되자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이 박창화나 누군가에 의해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된 이유는 거기에 묘사된 신라 화랑의 모습이 《삼국사기》가 전하는 충절의 무사 그것과 너무 상이할뿐더러 신라 귀족사회의 성생활이 믿기 힘들 정도로 난잡하다는 것이었다. (하편에서 계속)

■기억해주세요

《필사본 화랑세기》가 공개되자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이 박창화나 누군가에 의해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된 이유는 거기에 묘사된 신라 화랑의 모습이 《삼국사기》가 전하는 충절의 무사 그것과 너무 상이할뿐더러 신라 귀족사회의 성생활이 믿기 힘들 정도로 난잡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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