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636호 2019년 6월 10일

인문학 이야기

“품격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기품이자 위엄…명분은 일의 가치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죠”


나다운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보다 더욱 당혹스럽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는 훌륭한 죽음을 위해 오늘이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미국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2015년 펴낸 《인간의 품격(원제:The Road to Character)》에서 개인이 지닌 두 가지 단면을 소개한다.

한 단면은 우리 대부분이 목매는 소위 ‘이력서에 나열하는 내용들’이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성취한 소위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항목들의 나열이다. 이것과는 다른 단면이 있다. 그 사람의 장례식에서 다른 사람들이 죽은 그를 위해 말하는 내용들이다. 내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두고하는 말들이다.

두 종류의 인간

브룩스는 한 랍비의 혜안을 빌려온다. 유대경전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등장하는 중요한 은유를 사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아담’이 있다. ‘제1 아담’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세속적인 인간이다. 이 아담은 항상 남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우위를 차지하는 데 혈안이 된 짐승이다. ‘제2 아담’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는 침묵하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는 남들에게 선행을 베풀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최선을 다한다. 남에게는 정직하고, 자신에게는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브룩스는 우리에게 제 1아담과 제2 아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라고 충고한다.

품격(品格)이란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기품이나 위엄이다. 그런 품격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자신에게 일어날 최악의 상황들을 항상 상상하고 그것을 미리 준비하는 마음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마음가짐을 라틴어로 ‘프레메디타치오 말로룸 (premeditatio malorum)’이라고 말했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최악의 일들에 대한 예견(豫見)’이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나 혹은 만날 사람들에게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미리 계획을 세운다. 세네카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일도 지혜로운 사람의 기대 이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모르 파티

니체는 세네카의 ‘프레메디타치오 말로룸’을 잘 알려진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문구로 설명한다. 아모르 파티를 직역하면 ‘(죽음과 같은)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이는 자신에게 할당된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그것이 슬픔이든지 기쁨이든지, 그것이 선하든지 악하든지 인생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것을 관조해 항상 미래의 자신을 위한 최고의 발판이나 지렛대로 만드는 지혜가 아모르 파티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만물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점점 더 아름다운 것들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나는 이런 것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이들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아모르 파티. 이 문구가 나의 사랑이 되게 하라!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를 탓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심지어 나를 고소하는 사람들을 고소하길 원하지 않는다.” 니체는 아모르 파티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위대함”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자신에게 우연히 다가온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운명조차 그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인 아모르 파티의 정신을 말살할 수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고통은 이 정신을 소유한 사람을 한 단계 높은 단계의 인간으로 승화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오이디푸스는 세네카가 말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최악’을 경험했으며, 니체가 말한 ‘운명’의 종착점인 죽음과 씨름하는 인간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그런 인간인 오이디푸스가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는지를 마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처럼 덤덤하게 노래한다.

폴로네이케스의 명분

폴로네이케스는 자신이 테베에서 추방한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찾아왔다. 자신이 테베의 왕이 되는 데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는 게 유리할 것이란 신탁을 받아서다. 그는 이제 동생 에테오클레스와 테베의 왕권을 놓고 전투를 할 참이다.

명분(名分)은 자신이 하는 일을 보람되게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폴로네이케스는 자신이 왕권을 다시 찾아야 하는 명분이 없는 어리석은 자다. 그는 단지 장남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제1 아담’, 즉 남에게 전시할 자신의 모습에 상처를 받아 괴로워하는 미성숙한 인간이다. 명분은 자신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버린다. 폴로네이케스와는 달리 외관상으로, 육체적으로 고향에서 추방당한 그의 아버지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 그리고 죽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깨달은 자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부친 살해자와 근친상간자로 손가락질받지만, 오이디푸스는 남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집중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적인 삶의 명분을 찾았다.

■기억해주세요

오이디푸스는 세네카가 말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최악’을 경험했으며, 니체가 말한 ‘운명’의 착점인 죽음과 씨름하는 인간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그런 인간인 오이디푸스가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는지를 마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처럼 덤덤하게 노래한다.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