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박사의 인문학 산책 -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13) 대화
프랑스 화가 샤를 잘라베르(1819~1901)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1842, 유화, 115㎝×147㎝) 프랑스 마르세유미술관 소장.
프랑스 화가 샤를 잘라베르(1819~1901)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1842, 유화, 115㎝×147㎝) 프랑스 마르세유미술관 소장.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눈물로 가득한 연못’이란 장면이 등장한다. 앨리스는 잠시 잠이 들어 깊은 구덩이에 빠졌는데 출구를 찾지 못해 한참 운다. 앨리스는 몸 크기가 작아져, 자신이 흘린 눈물이 만든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생쥐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난다. 앨리스가 말을 건다. “오, 마우스(생쥐)여. 이 연못을 나가는 길을 아니? 여기서 헤엄치는 것이 너무 피곤해. 오, 마우스여!” 앨리스는 생쥐를 부를 때 ‘마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쥐에게 말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오빠의 라틴어 문법책에서 ‘마우스’에 대한 격(格)변화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우스, 마우스의, 마우스에게, 마우스를, 오 마우스여!’

앨리스와 생쥐의 대화

생쥐는 앨리스를 한참 쳐다본 후, 조그만 눈으로 윙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생쥐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엔 프랑스어로 말을 건넸다. 윌리엄 1세가 11세기 영국을 정복하러 이주했을 때, 그 생쥐도 함께 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윌리엄 1세가 거의 1000년 전 사람이란 사실을 몰랐다. 앨리스는 프랑스어를 배울 때 외운 첫 문장을 생쥐에게 말했다. “우 에 마 샤트(Ou est ma chatte)?” “고양이가 어디 있지?”라는 뜻이다. 그러자 생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에서 나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앨리스는 말한다. “미안해. 나는 네가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어.”

생쥐는 앨리스에게 묻는다. “네가 나라면 고양이를 좋아하겠어?” 앨리스는 자신이 키우는 ‘디나’라는 고양이를 만나면, 생쥐가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생쥐는 이번엔 꼬리까지 부들부들 떨며 다시는 고양이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앨리스가 자신이 키우는 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생쥐는 멀리 헤엄쳐 간다. 정신을 차린 앨리스는 다시는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생쥐는 다시 서서히 앨리스에게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물에서 나가자.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러면 너는 내가 왜 고양이와 개를 싫어하는지 알게 될 거야.”

경청(傾聽)

대화는 경청의 선물이다. 인간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과거의 입장과 관습을 버릴 수 있다.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표정을 관찰하고, 그들의 입장을 숙고하는 훈련이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 상대방 주장이 더 이성적이며 감동적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주장을 버리고 상대방 주장을 수용한다.

콜로노스 시민들은 비극 작품에서 ‘합창대’로 등장한다. 그들은 비극의 사건을 촉발하거나 유발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입장에서 오이디푸스와 그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숙고한다. 관찰과 숙고는 유연하다. 그들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생각했던 과거의 입장과 관습을 버릴 수 있다. 고향에서 쫓겨난 오이디푸스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비참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한다. 그곳은 아테네라는 도시 근처에 있는 콜로노스다.

이스메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운명적인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간극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는 악인가, 선인가. 그는 저주인가, 축복인가. 그는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그는 남편인가, 아들인가. 그는 오빠인가, 아버지인가. 오이디푸스는 그가 지닌 이중적인 정체성과 그 간극으로 혼미하다. 오이디푸스의 둘째 딸 이스메네가 등장해 이 혼동을 가중시킨다. 오이디푸스는 첫째 딸 안티고네로부터 이스메네가 망아지를 타고 햇빛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도착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는 이스메네에게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라고 말한다. 그런 후 그는 두 딸에게 “아아, 내 딸들이자 내 누이들이여!”라고 외친다.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오빠들인 폴리니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투쟁에 관해 자세히 알려준다. 그들은 삼촌인 크레온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테베를 짓누르고 있는 부정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가 지금은 사악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한다. 동생 에테오클레스에게 밀려 테베에서 쫓겨난 폴리니케스는 이웃 도시 아르고스로 망명했고, 그곳에 있는 친척 일곱 장수들을 규합해 테베를 공격할 참이다.

감동(感動)

오이디푸스와 두 딸의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콜로노스 주민들은 감동을 받는다. 주민 대표가 말한다. “오이디푸스여, 당신도 당신의 따님들도 진실로 동정을 받을 만합니다. 당신이 우리나라를 구할 힘이 있다니, 나도 당신을 위해 조언하겠습니다.” 주민들은 오이디푸스 가족에게 그들의 신성한 숲 무단 출입으로 ‘자비로운 여신들’이 화가 났으니 정결의식을 치르라고 조언한다. 콜로노스 주민들은 이제 진정으로 오이디푸스 말을 듣고 싶었다. “치료할 길 없이 당신을 엄습했던, 그래서 당신이 씨름해야 했던 저 처참한 고통을 들려주십시오.”

이제야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영문도 모르는 나를 도시(테베)가 사악한 결혼으로 내 재앙이었던 신부에게 묶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어머니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 소포클레스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리스어 감탄사를 하나 만들어 냈다. ‘이오!’ 풀어 번역하자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슬프다!”란 뜻이다. 콜로노스 주민들은 오이디푸스를 그에 대한 소문에 의지해 평가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고통에 동참했다. 오이디푸스의 불행을 자신들의 불행으로 여기는 동정심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콜로노스 주민들, 오이디푸스 얘기 들으며 마음 열어…대화는 경청 통해 타인의 입장을 숙고하는 훈련이죠
■기억해주세요

대화는 경청의 선물이다. 인간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과거의 입장과 관습을 버릴 수 있다.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표정을 관찰하고, 그들의 입장을 숙고하는 훈련이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 상대방 주장이 더 이성적이며 감동적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주장을 버리고 상대방 주장을 수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