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포커스

사망 500주기 다빈치

예술로 인본주의 꽃피운 르네상스인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인문·과학·기술 경계 넘나든 천재
“창의성이 발생하는 곳은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이다. 이를 보여준 궁극의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과거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한 말이다. 여러 예술가 중 왜 다빈치였을까? 다빈치는 회화, 조각 등 미술에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기구를 포함해 많은 과학적 도구를 상상하고 그려냈던 인물이다. 심지어 자신이 쓰는 비밀 노트마저 글자의 좌우를 반전해서 쓰는 ‘거울 쓰기’ 방식으로 쓸 정도로 독특한 생각을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5월 2일은 다빈치의 사망 500주기(週忌)였다. 그가 활동했던 이탈리아 피렌체를 비롯해 말년을 보낸 프랑스의 앙부아즈, 대표작인 ‘모나리자’가 있는 파리 루브르박물관 등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이어졌다. 500년이 흐른 지금까지 다빈치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지금 다시 다빈치인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인문·과학·기술 경계 넘나든 천재
다빈치가 위대한 이유는 르네상스 시대에 꽃피웠던 인본주의 사상을 예술과 과학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시신을 13구나 해부한 것으로 알려진 다빈치는 여러 점의 인체 해부학 그림을 남겼고 이를 통해 얻은 해부학 지식을 ‘모나리자’라는 명작을 그리는 데 활용했다. 그는 ‘인간이야말로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세계의 중심이자 만물의 척도’라는 개념을 당시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했다.

‘르네상스의 완성자’로 불리는 다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빈치에서 태어났다. 1519년 프랑스에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67년동안 그는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 물리학, 광학, 군사학 등 13개 이상의 전문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의 유산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있는 ‘최후의 만찬’ 등 굵직한 예술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빈치의 위대한 업적은 그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대와 무관치 않다. 이 시대는 ‘인간이 가진 고유 능력’을 중시한 매우 독특한 시기였다. 인간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했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등 많은 후원가들 덕분에 당시 예술가들은 창조적인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이런 풍요로운 환경이 다빈치처럼 다방면에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이른바 ‘르네상스인(Renaissance man)’을 탄생시켰다.

예술·과학·기술의 경계를 넘나든 천재

잡스의 전기를 썼던 월터 아이작슨도 최근작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다빈치의 끊임없는 호기심이 창의성의 원천”이라며 ‘다빈치에게 배울 점’을 몇 가지 제시했다. △어린 아이와 같은 경이감을 가져라 △세밀히 관찰하라 △디테일에서 시작하라 △시각적으로 사고하라 △잡을 수 없는 곳까지 팔을 뻗어라 △상상을 즐겨라 △협업하라 △메모하라 △경계에 갇히지 마라 등이다.

실제로 다빈치의 성공 비결은 남다른 호기심이란 평가가 많다. 의문이 풀릴 때까지 끈질기게 관찰하고 탐구했다고 한다. 대상을 보는 방식도 일반인과 달랐다.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관찰했다. 그가 회화의 원근법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호기심의 결과다.

그의 수많은 과학적 상상력은 7200쪽에 달하는 노트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이 노트엔 세계 최초로 자동차와 헬리콥터, 낙하산, 잠수함, 장갑차의 개념도까지 그려져 있을 정도다. 특히 인체 그림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기원전 1세기 로마군 장교 비트루비우스 책에 나오는 이상적 신체 비율에 자신의 해부학적 연구 결과를 결합해 구현한 작품이다. 다빈치는 좌뇌(이성)와 우뇌(감성)를 동시에 쓰며 과학적 사고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예술적인 감각을 접목한 예술가였기에 이같은 호기심들을 여러 작품들로 구현 수 있었다.

현실을 직시한 다빈치의 명언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인문·과학·기술 경계 넘나든 천재
다빈치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남긴 명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명언은 하나의 의미를 관통하고 있다. 상상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 세계로 발전하는 이른바 ‘현실과의 결합’이다. 다빈치는 노트에서 “당신이 손을 담근 강물은 지나간 마지막이면서 오고 있는 첫 물”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모든 것에 궁금증을 갖고 ‘현실의 강물’에 몸을 담그라는 것이다.

그는 또 “상상만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통역자가 되려고 하는 예술가들을 믿지 말라”고 말했다. 예술가였지만 실험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과학과 예술을 조화롭게 결합했던 천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만하다.

“사소한 것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말라”는 다빈치의 조언 역시 현실 속 사물 하나까지 세심하게 관찰했던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다빈치가 그렸던 ‘담비와 함께 있는 아가씨’라는 작품엔 제목 그대로 한 여인이 흰 담비 한 마리를 안고 있다. ‘밀라노 공작의 여자 친구인 체칠리아가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 담비는 자신의 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어버린다고 한다. 담비의 사소한 습성을 이용해 ‘변치 않는 사랑’이란 특별한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현실을 바라본 그의 관점들은 후대까지 그림으로 남아 ‘우리 마음 속 강물’을 찰랑거리게 하고 있다.

■NIE 포인트

다빈치가 중세시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아보자. 르네상스는 인류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인본주의와 서양의 인본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토론해보자.

은정진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