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경 사설 깊이 읽기] '퍼주기식' 재정정책은 결국 미래세대의 빚으로 돌아오죠
[사설] 미세먼지 대책도 '기·승·전·추경'으로 가는 건가

최악의 미세먼지가 잠시 주춤해졌지만 국민 불안은 여전하다. 대통령 질타에 뒤늦게 행정부처 장·차관들이 ‘현장 탐방’에 나서는 부산을 떨었지만 속시원한 대책에는 꿀먹은 벙어리다. 미세먼지와 관련한 대여섯 개 법안을 다음주에 일괄 처리하겠다는 국회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미세먼지 관련 법안들에 시장경제 발목을 잡는 독소 규제는 없는지, 누가 꼼꼼히 짚어보고 있는 건지도 걱정이다.

정부·여당의 미세먼지 대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추가경정예산 편성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세먼지 추경’의 필요성을 먼저 거론했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긴급 추경 편성을 제안하겠다”며 즉각 호응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존 재원으로 최대한 해보겠다”며 신중론을 펴기는 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이 앞서가는데 추경 요건의 적합성을 제대로 따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 들어 추경 얘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월부터 최악의 고용참사가 통계로 확인되면서 ‘일자리 추경론’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고용 창출을 내세운 추경은 2017년(11조원), 2018년(3조8000억원)에도 편성됐지만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규제 혁파로 투자가 활성화되면 돈 안 들이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데도 정부·여당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관제(官製) 일자리’에 집착해왔다. 3년째 일자리 추경에 매달리더니 이번에는 ‘미세먼지 추경’ 타령이다. 일자리도, 미세먼지도 대책은 ‘기·승·전·추경’처럼 돼 간다. 그제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도 바탕은 자금 살포였다. 추가로 내놓은 실업대책도 ‘6개월간 50만원 지급’이 골자다. 돈을 풀어 고비를 넘겨보겠다는 정책이 ‘하책(下策) 중의 하책’임은 동서고금의 사례가 넘쳐난다.(중략)

나라살림의 기준인 국가재정법을 정부·여당 모두 차분히 읽어보기 바란다. 이 법은 예산총칙 조항(제16조 ‘예산의 원칙’)을 통해 ‘정부는 재정건전성의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국민부담의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재정지출 및 조세지출의 성과를 제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경은 요술방망이가 아니라 후대에 지우는 짐이다. <한국경제신문 3월8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재정은 '만병통치약' 아닌 국민 세금
추경 예산은 불가피한 경우만 편성해야
정부는 미봉책보다 근본 해법 찾아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퍼주기식' 재정정책은 결국 미래세대의 빚으로 돌아오죠
대한민국 하늘을 뒤덮은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공습은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건강한 생존권이다. 경제가 발전된다 해도, 국방력을 바탕으로 한 국가안보가 확립됐다 한들 건강한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라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출발점이다. 매일 마시는 물, 공기, 기본 주식의 중요성이 일깨워졌다.

‘공짜’이면서 일상에 ‘무한대’로 있는 공기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국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고,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그다음이다. 단기 과제와 중장기의 정책 과제 및 지향점은 누가,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노력이 우리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됐다. ‘국경 없는 세계’ 지구촌이 교역과 통상, 인적 물적 교류, 자본의 이동에 관한 문제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중국 상공의 대기가 한 나절 만에 한반도를 뒤덮으면서 미세먼지 해법에서 중국이 최대 변수가 돼버렸다. 그런 와중에 환경부 장관은 산업화가 뒤떨어진 북한에서도 미세먼지가 이동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인이 복합적이다.

문제는 심각해지고, 시민들의 반응이나 평가는 한층 까다로워지는데 이렇다 할 단기 해법은 없다. 국가 정부를 향한 요구 수준은 계속 높아지는데 5년짜리 정권이 내놓을 수 있는 해법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미세먼지 문제에서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게 된 현실적 이유일 것이다.

미세먼지 대책만이 아니다. 원인 제공을 정부 스스로 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은 분명히 있지만, 청년실업을 비롯한 일자리 창출에서도 정부가 똑 부러지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내놓는 해법이 재정에 기대기, 돈풀기다.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급한 대로 가시적 대책이라도 세워보려는 노력이 애처롭다. 하지만 고용대책에서 증명됐듯이 현금 퍼붓기는 하지하(下之下) 정책이다. 효과검증도 쉽지 않을뿐더러 대개 일회성으로 끝나기 쉽다.

추경예산 편성도 그런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1년 단위로 수입과 지출 예산을 짜고 국회 동의를 얻어 집행한다. 모든 정책이 여기에 기반한다. 예외적으로 돈을 더 지출할 수 있는 경우(추경 예산)를 법으로 열어두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 때나 못 하게끔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그런 추경이 근래 들어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툭하면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것은 너무 쉽게 행정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동시에 국가 재정을 건실하게 운용하겠다는 의지나 의심받게 된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재정 동원을 만병통치약인 양 여기다가는 다음 세대에 빚만 물려주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