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여러 개 포개놓은 것처럼
형세나 상황이 매우 위태로움 - 사기(史記)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누란지위 (累 卵 之 危)
▶ 한자풀이

累: 포갤 루
卵: 알 란
之: 갈 지
危: 위태할 위


먼 나라와 손을 잡고 이웃 국가를 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을 주장한 범저는 본래 위나라 출신이다. 그는 돈도 없고 인맥도 부족해 유세에 나설 노잣돈조차 없었다. 그래서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 수가를 섬겨 그를 수행했다. 한데 범저의 사람됨을 알아본 제나라에서는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많았다. 제나라 양왕은 범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까지 했지만 범저는 이를 사양했다.

범저의 인기에 마음이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가 위나라의 기밀을 누설한 대가로 선물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일러바쳤다. 범저는 모진 고문 끝에 겨우 목숨은 건졌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탈출한 범저는 마침 그 무렵 진(秦)나라에서 온 사신 왕계를 따라 진나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범저는 왕계를 통해 진나라 왕을 알현하고자 했는데 그때 그는 왕계를 통해 이런 말을 왕에게 전하도록 했다.

“지금 진나라는 ‘달걀을 겹쳐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합니다(累卵之危)’만 신의 유세를 들으신다면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범저는 1년여 뒤에 왕을 만나 자신의 계책을 유세했고, 그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은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알을 겹겹이 쌓아놓으면 언젠가 무너져 깨지듯이, 누란지위는 상황이 매우 위태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범저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수가는 어떻게 됐을까. 수가는 범저가 진나라 재상에 오른 사실을 모른 채 다시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다. 범저는 몰래 사신 수가의 숙소를 찾았고, 깜짝 놀라 안부를 묻는 수가에게 “날품팔이로 연명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수가는 자신의 처신을 후회하고 범저를 가엾게 여겨 음식을 대접하고 자신이 가지고 온 고급 솜옷을 준다. 결과적으로 그 음식과 솜옷으로 수가는 목숨을 구한다. 잘못을 저질러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