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4차 산업혁명과 적층생산

3D 프린팅의 적층생산으로
'다품종 대량 생산' 동시 가능
생산 유연함이 제조혁명 선도
[4차 산업혁명 이야기] 3D 프린팅은 대량·맞춤형 생산을 가능하게 하죠
“어떤 색이든 마음대로 고르세요. 검은색 중에서.” 이는 포드사의 핵심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모델 T의 대량생산으로 중산층도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었던 헨리 포드는 다양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별 선호도에 맞게 자동차를 고객 맞춤화했다면 조립라인은 느려지고,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지 못해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규모의 경제란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총비용이 1조원인 조립라인을 이용해 반도체 10만 개를 만들 때보다 100만 개로 생산을 늘릴 경우 생산 장비의 비용이 훨씬 더 많은 반도체에 분산된다. 이는 많이 만들수록 개당 단가를 낮출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많은 양을 생산한다는 것은 저렴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저렴하다는 것은 수익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들은 오랜 기간 특정 선도 산업에서 동일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데 필요한 품질과 속도, 효율성을 신속하게 달성함으로써 규모의 경제가 주는 혜택을 누려 왔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생산방식의 문제는 경직성이다. 대량제조 방식은 표준화한 제품에 특정된 기계를 대량으로 설치해야 하는 탓에 자본집약적이고 유연하지 못하다. 한 번 갖춰진 설비를 다른 설비로 바꾸기 위해서는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제조 방식은 작업의 범위가 매우 좁았다. 한편, 광범위한 부품 및 제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춘 기업이 광범위한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비용상의 이점을 ‘범위의 경제’라고 한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모든 상품을 판매하는 ‘모든 것의 상점’이 되면서 구현한 이득이 범위의 경제다. 결국 전통적 생산방식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함으로 인해 범위의 경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적층생산으로 인한 규모와 범위의 효율 달성

적층가공이란 재료를 다른 형태로 절단, 성형, 축소해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재료를 누적시켜서 제품을 만드는 생산방식을 의미한다. 쇠를 자르고 구부려 못을 만들지 않고, 처음부터 못 모양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3D(3차원) 프린팅으로 알려진 적층생산은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양자택일이 아니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이익으로 바꿨다. 하나의 장치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단일 산업에만 집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3D 프린터에서 한 종류의 금속분말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과 부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범위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생산 제품의 종류가 제한된 기존의 공장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전통적인 생산방식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면 범위의 경제는 희생돼야 했다. 많은 양의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대부분 생산 품목이 동일하거나 유사할 때만 실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층 생산을 통해 규모와 범위의 경제 모두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 다트머스대 경영대학의 리처드 다베니 교수는 그의 책 《넥스트 레볼루션》을 통해 적층가공 방식이 표준화된 대량 생산과 결합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제품이나 맞춤형 일회성 주문, 소량으로 만들어지는 전문 품목에서 벗어나 대량생산 방식에 적층생산 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2013년 구글의 모듈형 스마트폰 제작 프로젝트인 ‘아라’가 대표적이다. 모듈형 스마트폰이란 사용자가 배터리, 카메라, 전화 등 다양한 요소를 담당하는 각각의 부품을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다. 아라 프로젝트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반 제조보다 50배 빠른 속도로 회전할 수 있는 고속 3D 프린팅에 의한 제조가 있었다. 대량생산 방식에 3D 프린팅을 접목하자 대량 맞춤형 상품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적층생산을 통해서도 규모의 경제가 실현 가능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적층생산과 제조혁명

적층생산이 범위의 경제의 이점을 넘어 대량생산 방식에 적용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있다는 것은 합리적인 비용으로 다품종 대량생산이 구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술의 성숙으로 인해 다양한 산업 부문에 광범위하게 확산될 경우 과거 포드주의 조립라인의 등장이 가져다준 충격 이상의 혜택을 선사할 것이다.

한편,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언제나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낸다. 새로움 앞에서 기존의 승자가 갖는 혜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기술에 의한 혁신이 전통 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나 보수적인 최고위급 관료 기반이 없는 소규모 기업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점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일’은 성경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