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시사경제 - 매몰비용 (sunk cost)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

원전·보(洑) 폐지 철거로
기존 투자비용 막대 손실

기존 비용 너무 아까워하면
'매몰비용의 오류' 빠질 수도
기존 선택 자주 바꾸고, 편향된 결정 내리면 회수 불가능한 '매몰비용' 커져 돈이 낭비되죠
영국과 프랑스는 1969년 야심찬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했다. ‘콩코드’(사진)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 간 비행시간을 7시간대에서 3시간대로 줄인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콩코드는 1976년 첫 상업 비행에 성공했지만, 운영할수록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비행거리에 비해 연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었고, 기체 결함과 소음도 심했다. “이제라도 접자”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연구개발(R&D)에 쏟아부은 막대한 돈을 허공에 날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투자를 이어갔다.

이미 파묻혀버려 회수 불가능한 비용

콩코드 비행기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총 190억달러를 쏟아부은 끝에 결국 2003년 운영을 중단했다.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누적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탓이다. 일명 ‘콩코드의 오류’로 불리는 이 사례는 매몰비용(sunk cost)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린 대표적 사례로 경제학 책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매몰비용이란 말 그대로 이미 파묻혀버려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말한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하나의 선택을 위해 포기한 것 중 최선의 가치라면, 매몰비용은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회피할 수 없는 비용을 뜻한다.

매몰비용은 많은 사람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곤 한다. 본전 생각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매몰비용의 오류’는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 억지로 먹다 체한다거나, 공연이 너무 재미없는데 표값이 아까워 끝까지 앉아 있는 등이 대표적이다. 유명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포기에 관한 결정은 아주 중요한데 가장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학과 심리학 전문가들은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인간의 심리에는 △타인에게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욕구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규범 △낭비를 싫어하는 성향 △중도실패에 따른 책임회피 욕구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탈원전 이어 보 해체 놓고 잇단 논란

정부와 기업 역시 매몰비용 때문에 정책이나 경영전략을 짤 때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때론 매몰비용의 특성을 역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무료 문화행사를 여는 서울의 한 백화점은 예약만 하고 나타나지 않는 ‘노쇼’ 회원이 30%에 달해 골치를 앓았다. 이 회사는 예약 접수 때 딱 1000원을 받는 유료화 전략을 도입했는데, 이후 예약부도율이 10%대로 급감했다. 회사에 1000원은 돈벌이에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푼돈이었지만, 고객들에겐 매몰비용으로 작용해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정부의 ‘원자력발전 축소’ 정책이 논란을 일으킨 게 불과 2년 전인데 이번엔 ‘4대강 보 해체’ 방침을 놓고 찬반 논쟁이 시끄럽다. 오래전에 공사를 마쳤고 멀쩡히 잘 운영되고 있는 시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매몰비용의 오류는 미래 가치보다 과거에 편향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발생한다. 원자력발전소와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항상 ‘정치적 관점’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렸다. 철저히 사실에 기반해 장단점을 분석하고, 미래 활용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향을 잡는 게 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