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바로 알기 (2)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에 형태주의를 절충해 만들어졌다.
형태주의란 글자 형태를 바꾸지 않고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가령 '꽃'과 '잎'이 어울리면 소리는 [꼰닙]으로 나지만
형태는 '꽃잎'을 유지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롱패딩은 '길다란' 게 아니라 '기다란' 거죠
“요즘은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길다란 롱패딩이 유행이야.” “겸손이라는 것은 얇다랗고 긴 평균대에서 균형을 잡는 것과도 같다.” “대전의 한 전통시장, 넓다란 통로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대로 모은, 정서법에 어긋난 문장들이다. 어디가 틀렸을까? ‘길다란’은 ‘기다란’을 잘못 쓴 것이다. ‘얇다랗고’ ‘넓다란’도 ‘얄따랗고’ ‘널따란’으로 써야 한다.

‘소리적기+형태적기’가 표기 양대원칙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롱패딩은 '길다란' 게 아니라 '기다란' 거죠
글쓰기에서 이런 오류는 흔히 벌어진다. 사소한 것 같지만 때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채용 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하고(2017년 잡코리아 조사), 이성의 호감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2017년 알바몬 조사). 그렇다고 수많은 단어 표기를 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방법은 ‘원칙을 알고 응용’하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의 기본 원칙은 총칙 제1항에 담겨 있다.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이 의미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 조항은 한글 맞춤법의 두 가지 대원칙, 즉 소리대로 적는 방식과 형태를 유지해 적는 방식을 밝히고 있다.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소리글자(표음문자)다. 웬만한 말소리를 그대로 글자로 나타낼 수 있다. 그렇다고 맞춤법도 표음주의로 돼 있을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에 형태주의를 절충해 만들어졌다. 형태주의란 글자 형태를 바꾸지 않고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가령 ‘꽃’과 ‘잎’이 어울리면 소리는 [꼰닙]으로 나지만 형태는 ‘꽃잎’을 유지한다.

1954년 겪은 ‘한글파동’은 이 소리적기와 형태밝혀적기 사이의 오랜 갈등이 불거져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태는 우리 어법이 형태주의에 익숙해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 쉽게 그 형태를 밝혀 적는다.’ 제1항의 ‘어법에 맞도록 함’이란 그런 뜻이다.

‘길다’에 ‘-다랗다’ 결합하면서 발음 바뀌어

그런 배경에서 ‘기다랗다/얄따랗다/널따랗다’의 표기 원리를 살펴보자. 이들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길다/얇다/넓다’에 접미사 ‘-다랗다’가 결합했다. 그런데 똑같은 ‘-다랗다’가 붙었지만 결과는 좀 다르다. 우선 ‘기다랗다’는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했다. 당연히 발음도 [기다라타]다. 이럴 때 우리말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고 규정했다(한글 맞춤법 제28항). 바느질(바늘+질), 무쇠(물+쇠), 아드님(아들+님), 차돌(찰+돌) 같은 말이 모두 이 같은 원칙으로 설명된다.

‘얄따랗다’는 어떨까? ‘얇다’에서 ‘ㅂ’이 탈락하고 접미사 ‘-다랗다’의 발음이 [따라타]로 바뀌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발음이 [얄따라타]이므로 ‘ㅂ’은 버리고 뒤의 접미사도 소리를 반영해 ‘얄따랗다’가 됐다. 받침 ‘ㅂ’이 실현되지 않는데 굳이 이를 표기에 반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맞춤법 제21항에 나오는 내용이다. ‘널따랗다/짤따랗다’도 같은 이유로 표기가 정해졌다. 각각 ‘넓다/짧다’에서 온 말이지만 접미사와 결합하면서 마지막 받침 ‘ㅂ’이 사라졌으므로 표기도 소리를 따라간 것이다.

‘굵다랗다’와 비교해 보면 이런 규칙이 좀 더 명확해진다. ‘굵다’에서 파생한 이 말은 뒤에 있는 받침 ‘ㄱ’이 발음[국따라타]되므로 원형을 밝혀 적는다. 이런 규칙성은 ‘넓적하다/넙적하다’ ‘넓적다리/넙적다리’가 헷갈릴 때도 써먹을 수 있다. 발음이 각각 [넙쩌카다/넙쩍따리]로 마지막 받침 ‘ㅂ’이 실현된다. 이럴 땐 원형을 밝혀 ‘넓적하다/넓적다리’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