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포커스

'광주형 일자리'란 무엇인가

반값 연봉 완성차 공장 건설
광주시·현대차 설립 투자협약

2021년 하반기 가동 들어가
연간 10만대 규모 경차 생산

적정임금으로 일자리 창출효과
임금·근로조건 놓고 마찰 가능성도
지난달 31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에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장(왼쪽부터)과 이용섭 광주시장,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이 손을 잡고 있다.
지난달 31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에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장(왼쪽부터)과 이용섭 광주시장,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이 손을 잡고 있다.
‘반값 연봉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31일 투자협약을 맺으면서다. 광주형 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한 노사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적정임금 실현을 통해 고임금과 저임금으로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한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전북 군산과 경북 구미, 대구 등에도 비슷한 일자리 모델이 들어설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반값 연봉+복지’의 결합 모델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시가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AUTO) 5000’을 벤치마킹했다. 폭스바겐은 2001년 경기침체로 생산량이 급감하는 등 위기가 닥치자 노조 동의를 얻어 별도의 독립법인과 공장을 세우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본사 공장이 있는 볼프스부르크 지역사회와 노조가 ‘공장 해외 이전은 안 된다’며 회사 제안을 수용했다. 5000명의 실업자를 기존 생산직의 80% 수준인 월급 5000마르크(약 300만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독립회사로 설립된 ‘AUTO 5000’은 이후 정상궤도에 올라 위기가 끝난 2009년 1월 폭스바겐그룹에 다시 통합됐다. 광주형 일자리도 이런 원칙을 따랐다.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경영 책임 △원청과 하청업체 간 관계 개선 등 4대 원칙이 핵심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임금은 줄어들지만 현재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일자리를 나누는 것으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

광주 신설 공장에 총 7000억원 투입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근로자 임금은 국내 완성차 업체 다섯 곳의 연평균 임금(9213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적정 초임 평균 임금은 절반보다 조금 더 낮은 3500만원 안팎 수준이 될 전망이다. 연봉은 낮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기에 주거·육아·여가생활 등 생활기반과 복지를 지원한다. 복지를 통해 실질적 적정 임금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반값 연봉과 복지를 결합한 새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절벽으로 추락하는 고용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투자협약을 통해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완성차 생산공장(62만8000㎡)을 짓기로 했다. 이 공장을 경영할 신설법인에 현대차가 투자하는 게 핵심이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신설법인에 자본금 2800억원, 차입금 4200억원 등 총 7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광주시가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자본금의 21%인 590억원을, 현대차가 19%인 530억원을 각각 투자한다.

공장은 2021년 하반기 가동에 들어간다. 연간 10만 대 규모의 1000㏄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차가 아토스를 단종한 지 20년 만에 경차시장에 재진출하는 것이다. 현대차가 차량을 주문하면 신설법인이 생산하고, 현대차가 이를 다시 인수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직간접 고용 인력은 1만2000여 명에 달할 전망이다.

노동계 ‘딴소리’하면 판 깨질 우려도

광주시는 신설법인이 순항할 수 있도록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투자 규모의 10%에 달하는 보조금을 주고 취득세와 재산세를 5년간 각각 75% 감면해주기로 했다. 양측은 핵심 쟁점이던 임금과 복지 등 근로조건 등을 향후 구체적으로 정하기로 했다. 일단 전체 근로자 평균 초임 연봉은 주 44시간 기준 3500만원 수준으로 큰 틀에서 합의를 봤다. 노사상생협의회가 정하는 세부 임금 및 근로조건은 누적 생산량이 35만 대에 이를 때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상 앞으로 5년간(연 7만 대 생산 시) 임금 및 근로조건에 대해 별도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임금 인상률은 소비자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정하기로 했다.

다만 이 같은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우선 광주시와 현대차가 체결한 투자협약 자체가 노사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사상생협의회를 구성해 세부 임금 및 근로조건을 정하는 과정에서 지역 노동계가 ‘딴소리’를 할 경우 판이 깨질 수 있어서다. 부족한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전체 자기자본금(2800억원) 가운데 광주시(590억원)와 현대차(530억원)가 넣기로 한 자금 외에 1680억원을 더 확보해야 한다. 경영이 지속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경형 SUV의 단가가 낮아 수익성 확보가 만만치 않아서다. 노조 리스크도 문제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 추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NIE 포인트

광주형 일자리의 구체적 내용과 광주형 일자리가 갖는 의미가 뭔지 정리해보자.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광주형 일자리가 안착할 수 있을지 토론해보자. 군산과 구미 등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형태의 공장이 들어설 수 있을지 논의해보자.

장창민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