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경 사설 깊이 읽기] 노후 인프라는 안전은 물론 생산성과도 직결돼
[사설] 전국 노후 인프라 전면적인 안전점검 시급하다

경기 고양에서 지역난방용 대형 온수관이 터져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저유소 화재, 18명 사상자를 낸 서울 도심의 고시원 화재참사, KT 통신구 화재로 인한 통신대란에 이어 이번에는 지하 2.5m의 직경 1m짜리 배관이 파열됐다. 모두 한두 달 새 사고다. 이러다 ‘사고공화국’으로 전락할까 두렵다.

당장 지역난방공사가 철저한 안전점검에 나서야겠지만, 그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도로와 교량·터널, 에너지 관련 시설, 온갖 상업용 시설과 공공건물, 공동주택까지 안전 지대는 없다고 봐야 할 상황이다. 전국의 산업단지들도 노후화로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 터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무수한 SOC(사회간접자본)를 건설해왔다. 고도 성장은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의 다른 측면이기도 했다. 압축성장 이면에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날림공사’ ‘부실시공’ ‘빨리빨리 문화’가 그런 것이다. 공장과 상업시설, 공공시설 등 예외가 없을 것이다. 그런 데다 준공된 지 30~50년씩 되면서 급속히 낡아가고 있다.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는 어느덧 ‘구도시’가 됐다.

경찰은 일산 온수관 파열 사고가 ‘관리 소홀’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매설된 지 27년이나 된 시설이었다. 개인 집도 20~30년이면 크고 작은 보수를 해가면서 산다. 정부는 국가사회 인프라의 보수 관리와 안전 확보에 얼마나 투자해왔고 정성을 기울여왔는가. ‘안전=비용’이라는 인식부터 부족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비극적인 세월호 사고도 발생 원인은 이 문제로 봐야 한다.

정부는 SOC 시설을 필두로 국가적인 안전 점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압축성장기에 건설한 산업시설의 이용 사이클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안전은 시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일뿐더러 산업의 생산성과도 직결된다. 안전 비용은 낭비 지출이 아니고, 적정한 가격 지불이 장기 발전에 필수적인 것도 그래서다. 포퓰리즘에 갇혀 공공요금을 무작정 묶는 것도 그런 점에서 경계 대상이다. 지하철 요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곳곳에서 ‘적폐 청산’을 외쳐왔지만 안전불감증이야말로 전형적 ‘생활 적폐’다. 공무원을 늘린다는데 소방도, 다른 일상의 안전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 그 많은 재정 지출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성은 어디에 있나. 정부는 노후 인프라에 대한 전면적 안전점검을 하고 대책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거나 최소한 총리가 관련 부처들을 모아 지휘할 필요가 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문 정부 공약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2월6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최근 잇달아 발생한 안전사고는
시설 노후화·관리소홀 등이 원인
‘안전한 대한민국’ 말로 그쳐선 안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노후 인프라는 안전은 물론 생산성과도 직결돼
고양시 저유 탱크에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게 두 달 전이었다. 첨단 장비로 감시해왔다던 국가기관 시설이었다. 서울 도심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로 18명의 사상자가 생긴 것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KT 통신구에서 화재로 서울 서부 일대 인터넷이 마비된 통신대란도 불과 2주 전 사고였다. 이번에는 지하 깊숙이 매장돼 있던 대형 온수관이 파열됐다. 이 사고로 또 사망자가 생기고 2800여 가구가 난방도 안 되는 아파트에서 겨울밤을 보냈다.

이런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설 노후화 탓도 있을 것이고, 관리 소홀도 원인일 것이다. 만성화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도 문제다. 중앙 정부나 각급 지방자치단체,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사고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봐야 한다.

중요한 현실적 이유는 1960~1980년대 압축성장기에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던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산업 및 공공시설이 근래 노후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 생산 시설의 활용 사이클이 전반적으로 ‘안전 점검 및 보수’ 시기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는 보수에 적극 나서며 필요하면 대규모 리모델링도 추진해야 한다. 안전문제와 더불어 생산성도 떨어진다는 산업단지의 노후화도 그런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봐야 할 대상이다. 차제에 우리 사회 온갖 인프라의 안전을 총점검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돈이 들어가는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돈 문제로만 볼 수도 없거니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작은 비용으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어 오히려 경제적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 유지에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때 비용은 적정 가격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성립한다. 비용과 가격, 일상과 경제활동 곳곳에서 작용하는 발전과 성장의 기본 필수 요소다.

사고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전 문제를 각급 단위 기관에만 맡겨놓기에는 사고들이 너무 잦고 그에 따른 비용도 너무 많다. 범정부 차원의 문제인 이유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측면도 있다. ‘큰 정부’도 불사하겠다며 공무원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으니 그 값을 치러야 할 책무도 정부에 있다. 후진국형 사고들은 다른 나라 보기에도 민망하다. 단순히 부끄럽다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투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나라에 어느 외국인이 이주해올 것이며, 어떤 기업이 투자를 해올까. 상식의 문제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