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포커스

대만 원전정책'원점으로'
지난해 여름 18년 만에 '블랙아웃'
도시기능 마비…촛불로 버텨
국민들 전력수급 불안 더 커져
투표자 59% "탈원전법 폐지해야"

화력발전 비중도 2% 감소 그쳐
GDP 14% 차지하는 반도체산업
정전땐 타격…親원전으로 돌아서
대만이 국민투표를 통해 탈(脫)원전 정책을 폐기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가 빚어진 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대만 내 여론이 들끓은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지난해 1월 법 조문까지 고쳐 확정한 탈원전 정책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 절차를 밟게 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대만의 국민투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는 대만 사례 등을 참고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왔다.

국민투표자 59% ‘탈원전정책 폐기’ 찬성

대만 '탈원전' 탓에 대정전 겪은 후 국민투표로 폐기
지난달 24일 대만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토록 한 전기사업법 조문 폐지에 동의하는가’를 묻는 안건에 전체 유권자의 29.84%(유효 투표 참가자의 59.49%)인 589만5560명이 찬성하면서 가결 처리됐다. 대만 국민투표는 찬성자가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이고 투표자의 과반이 동의하면 통과된다. 대만 정부는 3개월 안에 국민투표 결과를 반영한 법안을 입법원(의회)에 제출해야 하고 입법원은 이를 심의해 통과시킬지 결정한다.

탈원전을 추진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22개 현과 시에서 치러진 시장 선거에서 6명의 시장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13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차이 총통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대만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당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경제 성적 부진과 탈원전 정책 등 민진당의 국정 운영 실패에 대한 국민의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여름 828만가구 대정전 ‘악몽’

탈원전 폐기 국민투표가 통과된 이유는 지난해 여름 18년 만에 발생한 대정전(블랙아웃)으로 전력 수급 불안감이 가중됐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난해 8월 대만에선 828만 가구가 정전되고 퇴근시간대 신호등이 일제히 꺼지면서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마오리현에서는 촛불을 켰다가 화재가 발생해 지체장애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대만 행정원은 당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 일하는 직원이 공급밸브를 잘못 작동해 가스 공급이 차단됐기 때문”이라며 탈원전이 정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전력 수급 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졌다. 언제든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지난 5월29일에는 전력공급예비율이 2.89%까지 떨어져 지난해 블랙아웃 사태 때의 예비율(3.17%)을 밑돌았다.
대만 '탈원전' 탓에 대정전 겪은 후 국민투표로 폐기
대만 정부는 전력난을 피하기 위해 지난 5월 원전 2기를 재가동하기도 했다. 통상 7~8월에 집중된 전력수급 불안이 갈수록 앞당겨져 올해는 3월 초부터(3.49%) 전력 수급이 불안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됐다.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14%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인 반도체 공장도 정전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핀궈일보는 반도체업체 TSMC가 1분간 정전되면 81억대만달러(약 2967억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각한 대기오염도 원인

급진적 탈원전 정책으로는 화력 발전량을 줄이기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대기오염도 개선하지 못하고 전력난만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론이 거세진 배경이다. 차이 총통이 지난해 1월 탈원전을 위한 전기법을 시행한 이후 원자력 발전 비중은 16.1%에서 8.3%로 곤두박질했다. 하지만 석탄을 이용한 화력 발전은 48.5%에서 46.6%로 큰 차이가 없었다.

대만은 이번에 ‘화력발전 생산량을 매년 평균 최소 1% 줄이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안건도 국민투표에 올렸다. 이 역시 투표자 76%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대만 국민은 화력발전을 줄이되 원전을 되살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런버거는 대만이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농장 617개를 설립해야 하며 배터리나 토지 비용을 제외한 비용이 710억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 인상 우려도 탈원전 정책 폐기의 배경으로 꼽힌다. 원자력 발전이 줄어들면서 대만 전력 생산 비용은 지난해 대비 올 10월 기준으로 7% 상승했다.

■NIE 포인트

대만이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 정책’ 폐기를 결정하게 된 배경을 토론해보자. 원전의 장단점을 정리해보자. 세계 주요국들은 원전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 우리나라의 탈원전 정책은 옳은 방향인지 등도 토론해보자.

김형규 기자/베이징=강동균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