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책임있는 지자체라면 국가 미래와 따로 가면 안 되죠
[사설] 1300만 경기도 지사라면 국가경제도 봐야 하지 않겠나

경기도가 도내 18세 청년들에게 국민연금 첫 달치 보험료를 대신 내주겠다고 나섰다. 내년 예산도 147억원 편성해둔 상태다. 이재명 경기지사 개인으로 보면 성남시장 때 ‘청년배당’에 이어 또 하나의 선심 정책으로 논쟁거리를 제기한 꼴이다.

‘생애 최초 청년국민연금’이라는 이 사업이 위법은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은 만 18세부터 가능하지만 학생, 군인, 실업상태 등으로 소득이 없으면 보험료를 안 내도 된다. 소득이 생기면 직장·지역 가입자가 되고, 이때부터 가입기간도 인정받는다. 다른 연금처럼 국민연금도 가입기간이 길수록 많이 유리하다. 이 지사의 의도는 18세 청년 전부를 일단 국민연금에 가입시켜줘서 나중에 가입기간 이익을 누리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더 많은 가입자 유치를 위한 국민연금 추후납부제도의 취약점을 요령 좋게 포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경기도 청년들이 가입기간 이득을 보는 만큼 국민연금 재정의 부담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이 지사 임기 4년간 64만 명을 조기 가입시키면 국민연금의 추가 지출은 최대 5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가뜩이나 국민연금 개편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이다. 미래세대에 부담 전가, 세금에 기대려는 손쉬운 개편, 심화되는 ‘님트 현상’ 같은 걱정스런 조짐이 보이는 판에 경기도가 전 국민이 조성한 기금의 장래야 어떻게 되든 ‘내 편’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모습이다.

경기도는 인구가 1300만 명에 달하는 전국 최대 광역 자치단체다. 내년 예산은 24조원을 웃돈다. 설사 모험적 사업을 시도해도 파장이 제한적인 성남시와는 급이 다르다. 경기지사 정도면 나라 경제가 돌아가는 형편도 봐야 한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숱한 논쟁도 당연히 그런 현안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섣불리 도입하느라 폰지게임과 제로섬게임의 속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맹점을 파고들면 다른 시·도는 가만히 있을까.

서울시 청년수당과 교육기본수당도 비슷한 사례다. 제주도가 개원을 앞둔 투자개방형 병원을 막은 것도 포퓰리즘에 기반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자치 행정이 선심 경쟁으로 치닫는데도 중앙 정부의 ‘복지사업 부(不)동의 권한’을 스스로 없앤 보건복지부는 경기도 행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국경제신문 11월15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재정 여건 등 감안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복지정책 확대하면
결국 국가의 지속 성장 해치게 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책임있는 지자체라면 국가 미래와 따로 가면 안 되죠
국정 곳곳에서 복지 프로그램이 너무 성급하게 도입되고 있다는 우려와 경고, 비판이 제기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욱 우려스런 것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에도 복지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려는 듯한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복지프로그램은 국가 차원에서 중앙 정부가 총괄하면서 부문별 속도나 전체적인 균형을 도모해야 맞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보건복지부가 쥐고 있던 ‘복지사업 부동의 권한’을 스스로 없애버렸다.

경기도가 이번에 18세 청년들에게 국민연금 첫 달치 보험료를 대신 내주겠다는 것은 위법도, 불법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게 인기영합적 복지정책이고, 꼼수 같은 행정이라고 비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전체 국민연금의 재정상황은 감안하지 않은 채 오로지 ‘경기도 안의 내 몫’만 챙기겠다는 태도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방이 복지 경쟁을 벌이는 한 단면인데, 복지부는 어떻게 손댈 여지도 별로 없는 상황이라는 게 더 문제다.

경기도 청년들이 18세에 가입하도록 해주겠다는 이재명 지사의 노림수는 경기도 청년들의 국민연금 가입 이득을 다른 곳보다 10년 정도 더 누리게 하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국민연금법에 규정된 추후납부제도의 원래 취지는 정상적으로 가입한 뒤 실업 질병 등으로 보험료 납부를 하지 못하는 경우 사후적으로 밀린 보험료를 내게 함으로써 단절에 따른 불이익을 면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규정의 이면, 즉 한 번 가입하면 그 순간부터 가입기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교묘하게 활용하겠다니 이것이 도 행정으로 과연 정도일까. ‘가입기간 이득’을 이용하는 경기도 청년들은 노후에 큰 이익을 보겠지만 전체 국민연금 재정에는 심각한 악영향이 불가피해진다. 가뜩이나 국민연금은 지금과 같은 구조를 유지할 경우 재정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결국 더 내고 덜 받거나 운용수익률을 획기적으로 올려야 하는 데 하나같이 저항도 많고 만만찮은 일이다. 그런 판에 경기지사가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내 몫이나 챙기겠다는 꼴이다.

경기도는 서울시보다도 인구가 300만 명이나 더 많다. 전국에서 가장 큰 자치단체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의 전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금 무엇이 현안이고 문제인지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모두 다른 시·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복지 프로그램을 쉽게도 시행하려 한다. 경기도의 행정이나 서울 시정이나 경기만의 서울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지자체 간의 과당 복지경쟁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앞서 성남시장 때도 몇몇 복지프로그램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성남시만 해도 무엇을 하든 나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제한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기지사쯤 되면 보는 시야도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