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놓고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이 중동의 맹주 격인 사우디를 제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다만 미국 등 주요 국가 간 대응엔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사우디가 서방의 주요 무기 수출국인 데다 국제 유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최대 산유국이란 점에서다. 또 미국으로선 테러와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이란 고립화 등 굵직한 이슈에서 사우디 협조가 필요하다. 미국의 이란산 원유 금수(禁輸) 조치를 앞두고 국제 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도 사우디를 강하게 제재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무기·석유 ‘큰손’ 사우디…고민 빠진 미국

사우디 왕실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써온 유력 언론인 카슈끄지는 지난달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됐다. 카슈끄지는 약혼녀인 터키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터키의 사우디 영사관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실종됐다. 이후 그가 사우디 왕실의 지시로 영사관에서 정보요원들에 의해 살해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에선 반인권 행태를 보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사건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미국이 사우디를 압박하는 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사우디를 택했을 정도로, 사우디는 미국 중동 전략의 핵심 국가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이기도 하다. 미국산 무기 비중은 50%를 웃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카슈끄지 사태는 대단히 끔찍하다”면서도 “무기 수출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은 이유다. 지난해엔 사우디와 향후 10년간 1100억달러 규모 무기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와의 무기 거래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도 사우디를 섣불리 자극하는 대신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의 ‘오일 파워’도 부담이다. 사우디는 일단 석유를 무기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러시아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상황에 따라) 1973년처럼 서방에 석유 수출을 중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현재 하루평균 1070만 배럴 수준인 산유량을 1100만 배럴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이 발언으로 급등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는 일단 보합세로 전환했다. 다만 사우디의 태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동지역 긴장 높아지며 국제 유가 불안정성도 커져
이란 제재 앞두고 유가 상승 압력 커져

미국이 5일부터 이란산 원유 금수에 나서는 점도 사우디를 몰아세우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유 시장 보고서에서 “이란 제재가 장기화하면 석유 공급과 재고가 감소해 글로벌 원유 공급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지난 5월 재개됐다. 미국이 ‘이란 핵 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이 이란의 핵 개발을 2030년까지만 금지하고, 탄도미사일 개발을 막는 장치가 없다며 개정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란이 반대하자 미국은 제재 기간을 연장하는 대신 협정 탈퇴를 결정했다.

이란 핵 협정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5년 7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6개국과 이란이 맺은 조약이다.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6개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란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5개 당사국은 미국의 결정과 관계없이 협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 재무부는 핵 협정을 탈퇴하면서 이란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환전망 관련 기관 등에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또 이란과 거래하는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유럽 등 다른 협정국에 대한 압박 조치의 하나다.

이란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가 늘면서 국제 유가가 더 빠르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엔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중국까지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유럽에선 프랑스 토탈사, 스페인 셉사가 이란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이탈리아 사라스스파, 에니스파도 거래량을 점차 줄이고 있다.

●NIE 포인트

이란 핵 협정 내용을 정리해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협정을 탈퇴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미국의 이란 원유에 대한 제재가 세계 경제 및 한국 등 주요 원유 수입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토론해보자.

설지연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