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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12호 2018년 10월 29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 (32)] 윤흥길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1970년대 판자촌 이야기

1970년대 서울의 판자촌에서 경기도 광주군(현재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으로 강제 이주당한 철거민들이 있었다. 이 철거민들은 주택 단지가 조성되지 않은 허허벌판에 가수용되어 인간다운 삶을 전혀 누릴 수 없었는데 당국은 이들에게 보름 만에 집을 지어 신고하게 하고 또 보름 만에 땅값을 일시불로 지급하게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였고 시간 여유를 두지 않고 가옥 취득세까지 징수하여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었다. 결국 내 집 마련이 좌절된 입주민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는 도시 빈민의 저항으로 번졌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이 역사적 사건, 이름하여 광주 대단지 사건을 배경으로 씌었다. 서술자인 ‘나’는 학교 교사이다. 어렵사리 성남의 고급 주택가에 집을 마련한 ‘나’는 재정상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메워 볼 요량으로 방 한 칸을 세 놓는다. 아이 둘과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그 방에 세든 사람이 주인공 권기용 씨다. 그는 광주 대단지 소요에 적극 가담하여 징역을 살고 나온 이력이 있다. 출판사를 다니던 그는 직장을 잃었고 이후에도 사회 생활을 순조롭게 하지 못하였으며 현재는 공사판에서 막일을 한다. 권 씨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은 구두를 닦을 때이다. 구두를 닦는 그의 솜씨와 정열은 구두닦이 장인의 그것 같다. 도금을 올린 금속제인 양 빛나는 구두를 바라보는 권 씨의 얼굴에는 평소 찾아보기 힘든 미소가 활짝 피어난다. 구두를 닦는 행위는 권 씨에게 거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출사 의식이자 화이트칼라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의식이다. 말하자면 구두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얼마 후 권 씨의 아내가 아이를 낳다 수술을 하게 되자 권 씨는 ‘나’에게 수술비를 빌려 달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거절했으나 뒤늦게 돈을 융통하여 권 씨의 아내가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 돕는다. 권 씨는 끝내 병원에 나타나지 않는데 아마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녔을 것이다. 그날 밤 집에 강도가 드는데 서툴기 짝이 없고 술까지 취한 강도는 바로 권 씨였다. ‘나’는 그를 못 알아본 체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음을 깨달은 그는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긴 채 자취를 감춘다.

철거민 입주권을 사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제일 놀란 장면은 서울시에서 입주자들에게 보름 만에 집을 지어서 신고하라고 했을 때 권 씨 내외가 분양받은 땅에 보름 만에 집을 지은 부분이다. 건설 노동의 경험도 없는 젊은 부부가 집을 뚝딱 지은 것이다. 그런 괴력을 발휘할 만큼 간절했던 내 집 한 칸에 대한 소망. 그 지극히 당연하고도 소박한 꿈이 엉성한 정책 시스템과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에 의해 좌절된 것이다. 자신의 몰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권 씨는 ‘이래봬도 나 안동 권 씨요.’ ‘안동 권 씨 허면 어딜 가도 괄신 안 받지요.’ ‘이래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등의 말을 하곤 했다. 애지중지하던 구두 아홉 켤레만 남기고 사라진 권 씨.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무리하여 철거민 입주권을 샀던 권 씨. 그는 이후 어디서 무엇을 하며 나이를 먹어갔을까.

이 작품은 권 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서술자인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지식인이다. 시대의 모순도 알고 권 씨가 공권력의 희생자임도 안다. 한편 ‘나’는 교사이며 부유하지는 않지만 일정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춘 계층의 소시민이기도 하다. ‘나’는 권 씨가 도움을 청했을 때 거절하였으나 곧 반성하고 권 씨의 아내를 도왔다. 부정적 현실을 비판할 지성도 있지만 이를 외면하고 안락하게 살고 싶기도 하다.

이런 ‘나’의 내적 고뇌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은 찰스 램과 찰스 디킨스를 비교하며 어떤 찰스로 살 것인지 자신에게 묻는 내용이다. 이름이 같고 가난한 유년기가 닮았고 문학 작품을 통해 빈민가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쏟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성공한 뒤의 삶은 꽤 달랐던 두 사람. ‘나’는 당연히 찰스 램이고자 한다. 문학과 삶이 일치되었던 찰스 램처럼 소외된 약자의 편에 서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나’는 권 씨 아내의 수술비를 선뜻 빌려주지도 않았고 가난한 권 씨 일가의 번잡스러운 생활상과 아이들의 난삽한 장난을 통 크게 수용하지도 못했다. ‘나’는 출세한 후 동전을 구걸하는 빈민가 아이들을 지팡이로 쫓아 버렸다는 찰스 디킨스를 닮아가는 것만 같다. 이렇듯 나지막하지만 치열한 ‘나’의 자성은 당대 지식인들의 육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2016년 수능 국어영역에 출제된 작품

작가는 경기도 성남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학부모들이 조심스럽게 광주 대단지 사건의 경험을 들려주자 그 내용을 소설로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거론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였으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몸담은 시대의 아픔을 소설에 담아야 한다는 작가 의식과 안일한 삶의 타성에 젖어드는 지식인에 대한 성찰적 비판이 1970년대 눈물 젖은 도시 개발의 역사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탄생시켰다. 2016년 수능 국어영역에 출제되기도 하였는데 일독하면서 문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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