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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11호 2018년 10월 22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 (31)] 전상국 《동행》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일

어릴 때 공포영화가 무서웠다. 뱀파이어와 좀비와 악령과 심령술사가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초자연의 세계. 나이를 먹으면서 진정한 삶의 공포는 평범한 인간의 평범한 일상에 드리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대체로 삶은 행복하고 인간은 아름답다는 믿음과 신화가 배반당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얄팍한 편법이 우직한 정공법을 이기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응원하던 사랑이 외풍에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존경했던 사람이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 혈육의 정조차 절대가 아님을 신문 사회면에서 확인하는 순간. 이런 순간들을 겪고 나면 더 이상 해맑은 얼굴로 깔깔대며 살기는 힘들어진다. 청소년들이여, 어른들의 얼굴이 찌들어 버린 것은 이런 연유다.

우리의 역사에는 한 차원 더 깊은 공포가 있다. 작은 시골 마을의 공동체. 어제까지 한 우물의 물을 마시고 잔칫상의 고깃점을 나눠 먹던 이웃이 오늘 갑자기 서로를 죽인다. 피는 피를 부르고 원수가 된 자들이 복수의 참극을 벌인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비극이니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겠는데 삶은 계속되어 선조 때부터 지켜온 공동체는 지속되고 구성원들은 비장한 이별도 야멸찬 절연도 없이 여전히 부대끼며 살아간다. 살육의 기억을 잊었을 리 만무하건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심지어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내가 없는 동안 내 아버지의 무덤을 관리한다. 징그러운 삶의 관성. 이것이 지옥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런데 이런 지옥이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 있는 것이 우리 현대사이고 그 비극의 정점에 6·25전쟁이 있다. 전상국의 ‘동행’은 전쟁이 빚어낸 이러한 비극을 탐구한 작품이다.

이념과 살육의 소용돌이

눈 덮인 강원도 산골, 형사와 살인범이 서로 신분을 감춘 채 밤의 눈길을 함께 걷는다. 키가 큰 사내는 형사고 작은 사내는 살인범이다. 힘겹게 개울을 건너고 언 발로 산비탈을 오르는 여정에서 둘은 자연스레 어린 시절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키 작은 사내 억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멸시하는 동네 친구 득수의 손을 물어뜯은 벌로 광에 갇힌 경험이 있다. 이후 그는 추위와 어둠에 대한 깊은 공포를 갖게 된다. 키 큰 사내 형사는 어린 시절 가엾은 토끼 새끼를 구하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여 상심한 경험이 있다. 억구는 전쟁 때 공산군 앞잡이가 되어 감투를 얻어 쓰고 졸지에 마을의 권력자가 되었으며 이념과 살육의 소용돌이 속에서 득수를 죽인다. 그러나 이후 국군이 마을에 들어와 권력 관계가 반전되자 득수의 동생 득칠에게 보복을 당한다. 아버지가 득칠의 죽창에 찔려 죽음을 당한 것이다. 도망치느라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억구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고 또 어린 시절 광에 갇힌 경험에서 비롯된 감금의 공포 때문에 자수도 하지 못한다. 풍파 속에서 서른여섯이 된 억구는 우연히 득칠을 만났고 결국 그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버지가 잠든 구듬치 고개에서 삶을 마감할 작정으로. 억구의 이야기를 들은 형사는 억구를 체포하지 않는다. 수갑 대신 담뱃갑을 건네며 하루 한 개씩만 피우라고 말한다. 억구의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오는 산속 아직 조용히 눈이 비껴 내린다.

형사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살인을 자백한 범인을 체포하지 않은 형사의 행위를 우리는 용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상반된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어린 청년이념의 쓰나미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인지 아닌지 판단할 틈도 없이 살인을 하고 아버지를 잃고 또 그 원수를 갚느라 인생을 보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전쟁과 시대의 희생자임을 부정하기도 힘들 것이다. 형사에게 억구는 어린 시절의 그 토끼 새끼를 연상시킨다. 그는 생물 선생이 토끼를 해부한 후 남은 고기는 구워 먹을 작정임을 알고 밤중에 선생의 집을 찾아가지만 담을 넘지 못한다. 그것은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토끼를 구하지 못한 것을 그는 내내 후회하였고 다시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형사의 직분이라는 ‘담’을 넘는 행위를 감내한 것이다.

어릴 적 토끼를 살리지 못한 형사

억구가 우연히 득칠과 재회했을 때 둘은 왈칵 반가움을 느낀다. 반가움에 술까지 같이 마신다. 그리고 억구는 득칠이 아버지를 선대조 산소에 모시고 벌초까지 매년 해 왔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낀 장면이다. 이 상황에서 반가움이라니. 고마움이라니. 이 둘에게 상대는 나의 혈육을 죽인 원수인 동시에 함께 자란 애틋한 동기이다. 자신이 죽인 친구 아버지의 묘를 벌초하는 삶. 반가움을 뚫고 되살아난 분노로 친구를 살해하는 삶. 인간의 생에 가장 큰 공포를 선사하는 것은 역시 전쟁이다.

형사가 억구를 놓아주었을 때 산속에 비껴 내리던 하얀 눈. 그 눈이 화해와 치유를 상징하는 소설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비극적인 역사를 마무리하는 조사(弔詞)가 되기를 기원한다. 때로 삶이 우리를 속이더라도 조금은 덜 찌든 얼굴로 살아가고 싶으니.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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