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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10호 2018년 10월 15일

서양철학 여행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56)]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상)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로서 언어 철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철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공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논리학과 수학에 흥미를 느껴 당시 수리철학 교수였던 러셀을 만나게 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철학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포로가 되었을 때 수용소에서 집필한 책이 《논리 철학 논고》이다. 이 책에서 그는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통해 세상의 진리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수용소에서 쓴 ‘논리철학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말은 비트겐슈타인의 명저 《논리 철학 논고》라는 책에 나오는 명언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도 같은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여기서 ‘말할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또 그것에 대하여 침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이 반영된 《논리 철학 논고》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 이제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들어보자.

“이 책은 철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내가 믿기에는, 그 문제들이 우리가 언어의 논리를 오해한 데에서 생긴다는 점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중략) 따라서, 나는 모든 본질적인 점들에 대한 문제의 최종 해결점을 찾았다고 믿는다.”

기존 철학의 한계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기존의 철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림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언어를 실재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보았다. 여기서 그림이라는 말은 언어와 세계의 논리적 구조는 동일하며, 언어는 세계를 그림처럼 기술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어로 세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은 얼핏 한자와 같이 애초부터 그림과 관련된 상형문자를 떠올릴 수도 있다. 예컨대 ‘천(川)’은 시냇물의 흐름에서 나온 글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그림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낱말’이 아니라 ‘문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담 밑에 민들레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 “담 밑에 민들레 꽃이 피어 있다”는 언어 표현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언어를 통해 사실을 그려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 표현이란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의 사실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언어와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은 각각 1 대 1로 짝을 이루고 있으며 똑같은 논리 구조로 되어 있다. 언어는 세계를 그림처럼 그려주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주변의 여러 현상을 직접 보지 않고 언어 표현만 듣고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그림 이론을 구상하는 데 교통사고를 다루는 재판에서 장난감 자동차와 인형 등을 이용한 모형을 통해 사건을 설명했다는 기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모형을 가지고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모형이 실제의 자동차와 사람 등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언어와 세계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 관점에서 보면, 언어의 기능이란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언어를 정확히 사용하면 그에 해당하는 세계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통해 알 수 없는 세계는 보여줄 수 없는 세계가 된다. 이 점에서 “언어의 한계는 즉 세계의 한계”라는 것이다. 이때 언어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정확히 일치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실을 왜곡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은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사람이지, 언어가 갖고 있는 그 의미 자체는 사실을 왜곡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로 그릴 수 있는 세계는 정확히 그리고, 그릴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은 기존 철학의 문제에 대한 그의 진단과 처방이었다. 지금까지 형이상학적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언어 사용 때문이라는 것이 진단이요,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 처방전이다. 기존 철학의 문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말하려고 했기 때문에 혼란과 거짓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릴 수 없는 세계,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던 것이다.

《논리 철학 논고》 이후 철학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확신 속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그만두고 떠났다. 언어게임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이 그에게 오기 전까지 말이다.

● 기억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 관점에서 보면, 언어의 기능이란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언어를 정확히 사용하면 그에 해당하는 세계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통해 알 수 없는 세계는 보여줄 수 없는 세계가 된다. 이 점에서 “언어의 한계는 즉 세계의 한계”라는 것이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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