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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07호 2018년 9월 17일

생글기자코너

[생글기자 코너] ''조조 무덤''의 진위 공방이 시사하는 것

시대와 세계를 매혹한 중국(위나라)의 초대 황제 조조의 무덤이 발견됐다. 삼국지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병법술로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를 펴냈다. 또한,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인재를 등용해 위나라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

역사의 인물로 남겨진 그의 무덤의 베일이 벗겨지자 역사계는 물론 세계가 주목했다. 2009년 12월부터 허난성 안양현에서 발굴이 시작됐다. 무덤의 망자가 ‘조조’라고 추정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남성 1명과 여성 2명, 총 3구의 유해가 발견됐다. 남성이 사망한 나이는 대략 60대 전후로 조조의 사망 시기와 비슷했다. 게다가 무덤 구조와 귀중품, 소장품 등이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 위서 무제기’의 역사 기록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만약, 무덤의 망자가 조조라는 증거에 확신이 생긴다면 허난성에는 삼국지의 향을 느끼기 위해 찾는 관광객의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삼국지와 역사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좋은 관광자원을 얻은 셈이다.

하지만 조조의 무덤이 아니라는 역사학자들의 말이 수면 위로 떠올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학자들은 허난성 당국이 주장하는 조조의 무덤은 타 유적에 비해 증거물의 수가 적다고 말했다. 게다가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은 조조뿐만 아니라 다른 제후들도 활동해 정확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이유와 함께 여론은 섣부른 판단을 내놓은 허난성 당국을 비판했다. 이를 이용해 중국 관광을 유도하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 돋보였다고 전문가들의 지적도 인용했다. 물질적·금전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속성을 보여줘 세계의 비난도 적지 않다는 의미도 내비쳤다. 시대를 장악한 조조, 이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의 장엄함은 감히 존경을 표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존재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여부는 조조와 그를 거장으로 남긴 시간과 역사만이 해답을 알 뿐이다.

이서연 생글기자(김해외고 1년) britz23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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