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의료분야와 인공지능

다양한 의료정보의 디지털화로
의료분야에 인공지능 빠르게 접목
AI 이용한 의료 서비스 개선에는
장점 활용 위한 폭넓은 고민 필요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이 안과질환 진단용 AI시스템을 활용해 망막질환 환자를 진단하고 있다.  /딥마인드 제공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이 안과질환 진단용 AI시스템을 활용해 망막질환 환자를 진단하고 있다. /딥마인드 제공
“나는 새로운 종류의 ‘사고하는’ 기계에 의해 밀려난 최초의 지식근로자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유서 깊은 퀴즈쇼인 ‘제퍼디(Jeopardy)’에서 74연승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쌓던 켄 제닝스가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에게 패하고 난 직후 ‘슬레이트(Slate)’에 기고한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동시에 그는 ‘퀴즈쇼 참가자’는 왓슨에 의해 밀려난 최초의 직업이지만 결코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그는 왓슨이 폐암 진료분야에 진출했다는 점을 알고 있진 않았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왓슨과 의료분야

퀴즈쇼 ‘제퍼디’에서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텍스트 형식의 문제가 출제된다. 무엇보다 언어유희와 지식이 묘하게 결합돼 일반인이 풀기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다는 점에 프로그램의 매력이 존재한다.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지식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정답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퍼디 컴퓨터’라 불리던 초기 왓슨은 IBM의 박사급 인력 25명이 투입됐음에도 ‘제퍼디’에 출제되는 문제의 답을 도출하는 데만 두 시간이 걸릴 정도로 개발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거듭된 발전을 통해 결국 우승하며 대중 앞에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었다.

이후 언어를 이해하고, 지식을 결합해 답을 도출하는 왓슨의 능력은 의료분야에 적용됐다. 암과 관련한 60만 건의 의학적 근거와 42개의 의학 학술지 그리고 임상시험 데이터로부터 200만 쪽 분량의 자료를 학습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왓슨의 탁월한 ‘자연어’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1500여 개의 실제 폐암 치료 사례와 2만5000개의 치료 시나리오, 진료기록, 검진 결과 등을 학습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병원인 뉴욕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센터(MSKCC: Memorial Sloan Kattering Cancer Center)와의 협업이 이뤄졌다. 방대한 자료를 학습시키고 난 뒤 본 병원의 간호사들이 왓슨의 학습에 대한 수정 작업을 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의료용 인공지능이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이다.

진료 보완재로서의 왓슨

왓슨 포 온콜로지는 진료기록과 학습된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능한 치료법을 권고해준다. 해당 환자의 진료 및 검사기록, 유전 정보 등을 왓슨에 입력하면 왓슨이 치료법을 제안한다. 제안은 초록과 주황, 빨강의 3단계로 이뤄진다. 초록은 가장 추천하는 치료법을, 주황은 고려해볼 수 있는 치료법을 의미하며 빨간색은 권고하지 않는 치료법을 뜻한다. 이뿐만 아니라 제안된 치료법을 클릭하면 근거가 되는 관련 논문과 임상연구 결과들이 함께 제시된다. 즉, 의사에게 치료법과 그 근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것이다.

왓슨이 제시하는 치료법은 의사들의 진료 과정에서 의미있는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 매일같이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분량의 연구 논문과 임상시험 결과가 업데이트된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출판된 종양학 논문은 약 4만4000개다. 하루평균 122개의 논문이 발표되며 10분에 한 편을 읽어도 매일 20시간 이상을 읽어야 한다. 사람 능력으로는 모두 소화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왓슨은 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 치료법 제안에 반영한다. 의사들의 보조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이유이다.

폭넓게 활용되는 의료 인공지능

의료분야에서 왓슨은 이미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한국 역시 총 7개 병원(가천대길병원,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병원, 조선대병원, 전남대병원)에서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한다. 왓슨의 도입으로 인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환자가 줄어들고, 지방 거점병원으로의 환자 유입이 증가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앞으로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인가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의료분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이 도입된다고 해서 의료 서비스가 지닌 본연의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즉,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질 좋은 의료 서비스가 적시에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진료 보조가 아니라 인간 의사의 약점을 보완하는 의료 인공지능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