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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01호 2018년 7월 2일

문학이야기

[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22)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아 참, 빵 싫어한다고 했던가?”지금 눈앞의 파랑새가, 내 앞에 놓인 빵 쟁반을 치우려는 몸짓을 하고 말했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우리 빵을 사 가는 단골손님이, 막상 빵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그래서 나 얼마나 어이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네 사정을 알고 나니까 이해가 돼. 네가 빵을 좋아해서 사 간 게 아니라 단지 집에서 불편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재혼한 아버지와 불행한 소년

주인공 ‘나’는 몹시 불행한 16세 소년인데 그 불행이 양과 질에 있어서 또래 청소년의 평균치를 심각하게 상회한다. 우선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 ‘나’는 6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청량리역에 유기된다. 어머니가 주머니에 넣어 준 대보름빵을 먹다 혼절한 ‘나’는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얼마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재혼하자 내겐 새어머니와 두 살배기 의붓여동생이 생긴다. 초등학교 교사인 새어머니 배선생은 ‘나’를 학대할 목적으로 결혼했나 싶을 정도로 ‘나’를 미워한다.


‘나’는 새어머니 눈에 띄지 않도록 존재감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간신히 생존한다. 말을 더듬는 증세까지 생겼다. 늘 밤늦게 귀가하는 아버지는 ‘나’의 사정을 모를뿐더러 안다고 하더라도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배선생이 밥을 주지 않으므로 ‘나’는 아파트 단지 입구의 빵집에서 빵을 사 먹고 연명한다. 불행은 계속될뿐더러 가속된다. 의붓동생 무희가 성폭행을 당한 징후가 발견된 후 유력한 용의자를 사법처리하는 데 실패한 배선생은 다음 용의자로 ‘나’를 지목한다. 저놈 잡으라고 악을 쓰는 배선생에게 쫓긴 ‘나’는 늦은 밤 도주하다 거리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가게, 늘 빵을 사 먹던 위저드베이커리로 뛰어든다. 점장은 단골인 ‘나’를 숨겨 준다. 그것도 빵 굽는 오븐 속으로. 알고 보니 오븐은 마법의 오븐이었고 점장은 마법사였으며 조수 소녀는 파랑새였다. 눈앞에 펼쳐진 희한하고 신기한 마법의 세상. 마술사 점장은 위저드베이커리닷컴이라는 수상쩍기 짝이 없는 사이트에서 수상쩍기 짝이 없는 빵들을 판매하고 있다. 마인드콘트롤이 필요할 때 먹는 마인드커스터드 푸딩,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해 주는 브로큰하트 파인애플 마들렌, 먹으면 원하는 과거 시점으로 타임슬립할 수 있는 타임리와인더 머랭쿠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메모리얼 아몬드스틱, 먹으면 뇌신경세포가 교란돼 무슨 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되는 악마의 시나몬쿠키 등등.

두 가지 선택

이런 걸 사는 사람이 있냐고? 있다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이 사이트 관리를 도우며 생애 처음으로 안전한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평화는 잠깐이었다. 악마의 시나몬쿠키를 친구에게 먹였다가 결과적으로 죽게 만든 여학생 고객이 반성하기는커녕 이곳을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경찰이 점장을 조사하러 오고 ‘나’는 간신히 탈출한다. 탈출한 ‘나’는 용감하게도 집으로 간다. 그것도 배선생이 ‘나’를 저주하기 위해 주문한 부두 인형을 배달하기 위해. 탈출 직전 점장이 건넨 타임리와인더 머랭쿠키를 지닌 채. 집에 도착한 ‘나’는 무희의 성폭력범이 다름 아닌 친부임을 알고 경악하며, ‘나’와 동시에 그 사실을 알고 ‘나’보다 더 경악한 배선생에게 공범으로 의심받는다. 혼란의 와중에 머랭쿠키를 바닥에 떨어뜨린 ‘나’는 배선생이 야수처럼 덮치기 전에 그것을 주우려 다급히 무릎을 굽힌다.

작가가 제시한 작품의 결말은 두 가지다. 우선 ‘Y의 경우’는 ‘나’가 머랭쿠키를 먹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의 재혼을 극구 반대하는 결말이다. ‘나’는 배선생을 새어머니로 맞지 않아 다행이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나쁜 사람임을 굳이 스스로 증명한다. 또 하나는 ‘N의 경우’인데 여기서 ‘나’는 머랭쿠키를 먹지 않고 현실과 부딪쳐서 스스로 미래를 만들며 올곧은 청년으로 성장한다. 말을 더듬는 버릇도 사라진다.

이번 학기,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읽었다. 재직 중인 학교에서 한 학생이 한 학기에 한 권의 책을 읽는 독서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이 책을 선택한 고교 1학년들은 독서토론 시간에 거의 예외 없이 선호하는 결말로 ‘N의 경우’를 선택했다. 나도 아이들에게 N이 좋다고 말해 줬다. 다행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을 긍정하고 있다. 타임슬립하지 않고 어쨌든 살아보겠노라 씩씩하게 말하고들 있는 것이다.

마법사가 준 것은 사랑

악당인 아버지, 악녀인 배선생, 무신경한 교사들. 가정과 학교에서 밀려난 ‘나’는 그래도 살 수 있었다. 마법사 점장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품어주었기에. 마법사는 평생 손에 닿는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려주며 살아왔다. 그가 사용한 에너지는 물질계를 교란하는 것이기에 그는 숱한 적을 만들었고 그래서 평생 불면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한 달에 단 하루 그것도 몽마의 공격을 피해 아주 얕은 잠을 잘 수 있을 뿐이다. 생명을 구한 마법사의 에너지. 파랑새는 그것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난해한 우주의 법칙을 들먹였지만 평범한 한 명의 독자로서 그 에너지의 본령은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마법사는 사랑을 퍼주느라 고통받지만 그 덕분에 ‘나’는 무사히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함께 사는 어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생명부지의 존재에게 받을 가능성은 얼마나 희박한가. 그래서 작가는 마법사를 불러와 마법을 부리게 했나 보다. 파랑새에 의하면 마법은 비물질계의 일.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이라고 마법을 부리지 못하란 법도 없다. 그래서 여전히 평범한 한 명의 독자로서 이젠 청년이 된 ‘나’에게 마법사 노릇 좀 해 달라 주문하고 싶다. 마법이 사랑이고 사랑이 곧 마법이니 씩씩한 청년이 그 정도 못할까? 저 가엾은 점장이 한자리서 진득이 영업하게 하고 물질계의 일은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곧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도 부합하는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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