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제조업 발목잡는 규제 많으면 국제 경쟁력 약화될 수밖에 없죠
[사설] 겹겹의 '모래주머니' 차고 달리는 한국 제조업체들의 현실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큰 주요 국가들의 제조업이 모두 활황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한경 보도(6월7일자 A1, 4, 5면)는 우리 산업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경의 심층 분석은 제조업 업황을 판단하는 기준인 ‘구매관리자지수(PMI)’로 진단했지만 기업가정신 고취도나 미래 일자리 창출여력 같은 다른 정성적 평가에서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신규주문, 생산, 재고 등을 수치화한 PMI에서 한국은 이른바 ‘G20’(주요 20개국) 중 최근 외환위기설이 돌고 있는 터키를 빼고는 꼴찌다.

이런 평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규제는 중첩되고 신규투자 유인 요인은 사그라드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필연적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우리 기업이 처한 가장 큰 애로는 무엇보다도 철벽같은 규제망과 불발한 노동개혁으로 인한 경직된 경영환경이라고 봐야 한다. 수도권 공장 억제와 같은 ‘입지규제’는 기업 리쇼어링(국내로 유턴)까지 막고 있다. 친(親)노조 일변도의 ‘고용규제’는 일거리 증감이 수시로 변하는 제조기업에서도 파견근무 등을 어렵게 해 근로 유연성을 가로막고 있다. 출자제한 등 ‘투자규제’도 만만찮다.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유·무형의 ‘재벌개혁’에 매달리면서 국제시장에 나서는 기업들 발목 잡기에 바쁘다. 관제(官製) 일자리 만들기에 치중하느라 좋은 일자리의 근원인 기업을 위축시키는 게 현실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정부 압박을 의식해 지배구조 개선에 골몰하는 사이 중국의 비야디가 1000만원대의 전기차를 내놓으며 쫓아오고 있다. 현대차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에 성공했지만 충전소 건설 규제에 막혀 일본에 추월당하고 있다. 현대차만의 일이 아니다.

법과 행정으로 강요되는 ‘상생 협력’으로 인한 부담도 적지 않다. 산업생태계에 기반한 업계 자율의 협력 문화가 효과적일 텐데, 납품단가 일감계약 기술이전 같은 사안에서도 대기업은 감시와 규제 대상으로 전락했다. 감세(減稅)는 언감생심이고, 이런 규제를 하나하나 거론하자면 끝이 없다.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들은 한국 산업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서비스산업 등 발전시켜나가야 할 부문도 적지 않지만 지난 5년간 고용 창출에서 1등 공신은 제조업이었다. ‘중국 제조 2025’ ‘반도체 굴기’ 등의 장정에 나선 중국도, 통상전쟁까지 불사하는 미국도 궁극적 지향점은 자국 기업 보호와 육성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는 스마트공장, 인터넷 융합 등으로 신(新)제조업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 기업은 애로를 하소연할 데도 없다. 너무 많은 모래주머니를 찬 채 냉혹한 국제경쟁에 나서야 하는 기업의 위축은 심각한 ‘대한민국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6월8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수년째 호황인 반도체 제외하면
국제 경쟁력 갖춘 제조업 별로 없어
각국은 제조업 육성 적극 나서는데
각종 규제로 성장 발목 잡아선 안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제조업 발목잡는 규제 많으면 국제 경쟁력 약화될 수밖에 없죠
‘반도체 착시’라고도 하고 단순히 ‘과도한 반도체 의존’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제조업이 수년째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부문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최근 잇달았다. 과거 수출에서 큰 부문을 차지했던 조선은 구조조정기에 들어섰고,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자동차 업종도 강경 노조의 활동 등으로 인해 적절한 변신을 하지 못하면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가 여러 차례 나왔다.

한국 제조업이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의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넛 크래커’ 처지가 됐다는 비유도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기술에서 독보적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가격 경쟁력까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경제 발전에 제조업 육성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정 규모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 가운데 제조업이 탄탄하게 받쳐주지 못하는 경제로 번영하는 나라도 잘 없다. 굳이 제조업에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라면 서비스 산업이라도 확실하게 발전해나가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경제적 가치가 확실한 광물·에너지 자원이나 농어업 같은 1차 산업이라도 월등해야 한다.

한때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받았던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은 제조업에 크게 의존한 것이었다. 그런 한국의 제조업이 지금 처한 현실은 어떤가.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제시장의 여건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자. 국내에서 우리 스스로가 제조업종의 대기업 발목을 잡는 경우가 너무 많다. 법과 행정의 규제, 과도한 친노동 성향의 정책, 대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 압박도 그런 사례다. 노동조합 쪽 의견 중심으로 진행돼온 일련의 고용·노동정책이나 납품단가와 일감과 관련된 행정 개입도 그런 맥락의 정책들이다. 경제단체들조차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산업계가 속앓이만 하는 상황으로 전락하고 있다. 결국 기업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기업인들의 기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됐다. 동원 가능한 방식으로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해외 강대국들의 기류와는 눈에 띄게 다르다.

기업이, 특히 대부분이 대기업인 제조업종이 침체되면 그 파장은 너무나도 크다. 일자리 창출은커녕 있는 일자리도 줄어들게 된다. 세수가 줄어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도 제한된다. 소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니, 경제가 나쁜 쪽으로 악순환할 수 있다. 그런 안타까운 일이 정부 쪽에서 비롯되고 있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