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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97호 2018년 6월 4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18)] 정도전 《신도가》


악장은 조선 초기의 송축가다. 궁중의 의식과 행사와 왕의 행차 등에 사용하던 음악의 가사로 조선의 창업과 문물제도를 찬양하거나 왕덕을 기리는 내용이다. 새로운 왕조의 이념과 지향을 펼치는 데 적합한 노래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신도가, 감군은, 상대별곡, 정동방곡 등이 그 대표작이다.

그중 신도가는 개국공신 정도전의 작품이다. 전반부에서는 한양의 아름다운 풍경과 새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성덕을 찬양하고, 후반부에서는 배산임수의 명당에서 태조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다. 다소 틀에 박힌 내용으로 읽히지만 정도전의 생애를 알고 읽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새로운 나라를 열고 도성의 기틀을 닦은 거인의 활달한 기상이 뿜어져 나온다고나 할까?


정도전은 봉화 지역의 토착세력 출신이다. 과거를 통해 등용돼 정몽주, 이숭인 등과 함께 공민왕의 유학 육성 사업에 참여했으나 공민왕 사후 우왕 때 정국을 주도한 이인임 등에게 축출돼 전라도 나주 회진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유배지에서 정도전은 한 촌로에게서 ‘관리들이 국가의 안위, 민생의 안락, 시정의 득실, 풍속의 좋고 나쁨에는 뜻이 없고 녹봉만 축낸다’는 질책을 듣는다. 이때 정도전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오랜 방랑 생활을 하며 곤궁한 백성의 삶을 생생히 목격한다. 그가 제시한 민본사상은 이렇듯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운명적 첫 만남은 우왕 재위 시절에 이뤄졌다.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함경도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간 정도전은 이성계가 자신의 이상을 펼치게 해줄 사람이라 판단했다. 그는 술을 마시면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했다고 말하곤 했다. 이성계를 한고조에, 자신을 장자방에 비유한 것이니 이는 곧 이성계가 정도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도전이 자신의 포부를 위해 이성계를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야심만만한 사나이의 이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순시대의 현실 속 구현이다. 임금과 신하가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의 실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상을 구현하는 일은 대체로 순조롭지 않다. 정도전의 이상을 좌절시킨 현실은 세자 책봉 문제였다. 태조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는 신의왕후 한씨, 둘째는 신덕왕후 강씨다. 신의왕후의 아들이 방우·방과·방의·방간·방원·방연, 신덕왕후의 아들이 방번·방석이다. 정도전은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했는데 정몽주를 제거해 조선 건국을 가속화한 첫째 부인 소생이 불만을 가진 것은 당연지사였고 결국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은 방원 세력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은 표면적으로는 세자 책봉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둘의 정치적 이상의 차이였다. 정도전이 왕권과 신권의 조화 위에 꽃피는 왕도정치를 지향했다면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사후에도 정도전에게 주어진 운명은 가혹했다. 오백년 조선 왕조 내내 신원되지 않다가 고종 때에야 공신 칭호를 돌려받았다.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건국 초 설계를 주도한 정도전의 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조선 개국 당시 정도전의 활약은 눈부셨다. 개경에서 한양으로의 천도를 이끌었고 현재의 경복궁 및 도성의 위치를 정하고 수도 건설을 총지휘했으며 경복궁을 비롯한 성의 이름과 한성부의 행정구역인 5부 52방의 이름을 지었다. 또 서울을 구성하는 상징물에 의미를 부여했는데 대부분 유교의 덕목이나 가치가 담긴 표현이었다. 수도 서울이 정도전의 구상 아래 정치 행정의 중심은 물론 유교적 이상을 품은 곳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서울의 설계자 정도전이 신도가를 부른 것은 거의 필연이라 하겠다. 그가 꾼 꿈의 흔적은 이 노래에 오롯이 남아 있다. 신도가는 이 천재적 국가 기획자의 야망과 감흥과 포부가 낳은 작품이라 하겠다.

악장은 조선 왕조 창업 초기의 민심을 수습하고 건국의 정당성을 홍보하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해 문학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지 않으며 향유 계층이 제한적이었으므로 성종 때 소멸한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를 열고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고자 한 이상주의자들의 꿈을 담은 시가로서의 가치는 빛바래지 않고 문학사 속에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서울사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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