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통신요금 원가자료 공개' 판결 논란
[Cover Story-원가공개 논란] 공익성 앞세우지만 가격 통제 따른 후유증이 더 클 수도
미국의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재생하면 나오는 광고의 원가는 얼마일까. 내가 쓰는 휴대폰의 재료값은 얼마나 될까. 한 번쯤 쓰고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원가가 궁금했을 것이다. 우리는 소비할 때 재화나 서비스의 원가가 아닌 부가가치에 따라 매겨진 가격을 보고 결정한다. 원가는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고유 정보여서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원가를 공개하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반(反)시장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게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얘기다.

대법, ‘통신비 원가 정보’ 공개 판결

그럼에도 원가를 공개하라는 사회적 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사법부의 최근 판결도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움직임이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2011년 “이동통신 3사는 독과점을 구성해 시장평균을 초과하는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는 반면 소비자들은 높은 통신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원가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통신사들이 정보 비공개로 얻는 이익보다 정보 공개로 발생하는 공익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참여연대의 이 같은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통신정책 주무부처였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을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통신사들이 원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정한 공개 범위는 원가 산정을 위한 사업비용, 영업보고서의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영업통계 명세서 등이다.

이 중 영업통계 명세서에는 분기별 가입자수, 회선수, 통화량, 고용 인원수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법원은 “정보가 포괄적인 항목이어서 공개하더라도 수익 및 비용의 구체적인 현황과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개될 정보가 정당한 이익을 해치는 영업 비밀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판단이다.

전파 및 주파수가 통신사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쓰는 단순 재화인지, 아니면 공공재인지에 대한 판단이 최종 결론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공공재를 이용하는 산업에 대해서는 규제를 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논리였다.
[Cover Story-원가공개 논란] 공익성 앞세우지만 가격 통제 따른 후유증이 더 클 수도
“가격통제가 곧 공익은 아니다”

법원은 “이동통신 서비스는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적 자원을 이용해 제공된다. 또 국민 전체의 삶과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통신서비스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돼야 할 필요 내지 공익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감독과 규제 권한이 적절하게 행사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공익’을 앞세워 가격통제라는 방식을 용인함으로써 경제적 자유와 시장 자유라는 가치와 원칙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가격 통제가 곧 공익 실현이라는 시각을 사법부가 드러냈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국가가 가격 통제권을 갖는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공익이 실현되는 건 아니다”며 “(법원 판결이) 시장원리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통신비가 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점만 받아들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규제의 범위를 가격으로 확장한 데 대해서도 무리한 법해석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전파를 공공재로 보고 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가격까지 규제한다는 건 과도한 확장 논리”라며 “전파의 사적 남용 등에만 규제 권한이 한정돼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over Story-원가공개 논란] 공익성 앞세우지만 가격 통제 따른 후유증이 더 클 수도
“원가 공개는 사회주의적 주장” 지적도

일각의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번 판결로 공개되는 자료는 2G(2세대)·3G(3세대) 서비스가 제공되던 때의 원가 산정 서류다. 참여연대는 추가로 LTE(4세대) 서비스가 시작된 2011년 7월 이후의 원가 공개도 요구할 방침이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신비 원가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원가 공개 논란이 뜨겁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납품 품목 원가를 공개하라고 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도 같은 선상의 문제다.

경제계 관계자는 “공공재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가격 통제가 가능하다고 규정하면 사실상 모든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주장으로 인해 점점 더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NIE 포인트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원가가 소비자의 알 권리에 해당되는지를 친구들과 토론해보 자. 원가 공개의 의미와 그에 따른 문제점들 도 생각해보자.

고윤상 한국경제신문 지식사회부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