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589호 2018년 4월 9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10)] 염상섭의 《두 파산》


광복 직후 우리 사회상

1949년 발표작이니 그야말로 광복 직후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당대의 풍경은 등장인물의 면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됐다. 해방 공간에서 한자리 차지해볼까 정치권을 맴도는 정례의 남편, 일제시대 도지사를 지냈으니 반민족행위자로 처벌과 재산 몰수의 위기에 처한 옥임의 남편, 이런 남편들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정례 모친과 옥임, 시골 보통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고는 하나 고리대금업으로 이자 독촉에 여생을 건 듯 보이는 영감 등등.

작가는 인물의 삶을 소상히 스케치해 지극히 건조한 어투로 서술한다. 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점은 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당시 물가와 부동산 가격까지 얼추 짐작할 수 있는 사실주의적 기록이 흥미로운데 이런 점은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의 《고리오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들의 삶의 정황은 그들의 금전 거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므로 여기에 신경 쓰며 읽어보기를 권한다.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의 처지와 감정선이 손에 잡힌다.

정례 모친은 은행 빚 30만원을 내 보증금 8만원에 월세 8000원짜리 가게를 얻어 문방구를 연다. 그런데 자본금이 부족하니 물건을 충분히 들여놓을 수 없다. 여기에 학교 동창 옥임이 10만원을 동업 형식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월 2부 안팎으로 배당금을 받아간다. 월 2부면 연이자 240%다. 엄청난 고리다. 실제 옥임은 아홉 달 동안 20만원 가까이 벌어간다. 그런데 정례 모친의 남편이 벌인 자동차 사업이 시원치 않아 자꾸 문방구에서 돈을 빼 간다. 투자한 10만원을 회수하지 못할까 염려한 옥임은 8만원 보증금 영수증을 담보로 잡고 10만원에 대한 1할5부의 이자, 즉 1만5000원을 요구한다. 이것이 8개월 연체돼 12만원이 되고 정례 모친은 옥임에게 총 22만원의 빚을 진 셈이 된다.

주인공과 옥임의 돈거래

그러자 옥임은 정례 모친에게 자신이 교장 영감에게 20만원을 빌린 게 있으니 한 달 이자 1할 2만원을 얹어 22만원을 대신 갚으라고 요구한다. 이 부분에서 고리대금업자 옥임의 지독함이 드러난다. 10만원에 대한 이자는 1만5000원이지만 22만원에 대한 이자는 2만2000원이니 무려 이자가 7000원이 늘어나는 셈인데 당당하게 이런 요구를 하다니 지독하다 못해 사악할 지경이다. 옥임의 비정함은 길거리에서 정례 모친에게 ‘남의 돈 생으루 먹자는 도둑년 같은 배짱 아니구 뭐냐’며 창피를 주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상대의 인격을 짓밟아 망신을 주는 것이 옥임에게는 말하자면 채심 수단인 것이다. 결국 정례 모친은 교장 영감을 통해 정례에게 22만 원을 돌려주고 석 달을 더 버티다 가게를 넘기고 만다. 보증금 8만원과 가게 설비, 물건은 모두 교장 영감에게 넘어가고 교장 딸 내외가 그 가게를 차지한다. 배후에서 권리금을 얹어 교장에게 팔아넘긴 것은 물론 옥임이다. 1년 반 동안 죽어라 일해서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고 파산한 정례 모친은 자리에 누워서 끙끙 앓는다.

그런데 파산은 정례 모친만 한 것이 아니다. 정례 모친은 빚 독촉을 하러 온 교장 영감에게 말한다.

“옥임이가 불쌍해 못 견디겠어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원서를 끼구 다니고 ‘인형의 집’에 신이 나 하구, 엘렌케이의 숭배자요 하던 그런 옥임이가 동냥자루 같은 돈 전대를 차구 나서면 세상이 모두 노랑 돈닢으로 보이는지? 어린애 코 묻은 돈푼이나 바라고 이런 구멍가게에 나와 앉었는 나두 불쌍한 신세이지마는, 난 옥임이가 가엾어서 어제 울었습니다. 난 살림이나 파산 지경이지, 옥임이는 성격 파산인가 보드군요.”

경제적으로 파산한 정례 모친이 친구 옥임의 성격 파산을 걱정한다. 성격 파산이란 동경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황금제일주의자의 삶을 택한 옥임의 정신적 파산을 의미한다.


경제적 몰락의 시대를 반영

작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제3자의 시각에서 각자의 생활과 속셈을 서술한다. 작가의 주관이 드러난 것은 정례 모친뿐 아니라 옥임 역시 파산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 정도다. 남편들에 대한 서술도 마찬가지이다. 옥임의 남편은 반민족주의자니 부정적 인물로 봐도 무방하겠다. 그렇다고 정례 모친의 남편이 긍정적 인물인 것도 아니다. 친일 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건실하지 못한 생활로 아내를 고통에 빠뜨렸고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기를 쳐서 옥임의 돈을 빼앗아 올 궁리를 한다.

이 작품은 해방 공간에서 경제적 몰락을 겪은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돼 인간성이 몰락하는 세태를 전형적 틀에 갇히지 않은 강한 개성적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을 등장시켜 대립시키는 평면적 서술을 거부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생생한 인물 군상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곧 서사가 되도록 했다. 작가는 세태를 관찰해 기록하는 것이 소설가의 소임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을 따라가면서 스스로의 삶을 통찰하는 것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