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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89호 2018년 4월 9일

서양철학 여행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36) 루소(하): 에밀


혹시 전편에서 살펴 본 루소의 《사회계약론》 첫 문장을 기억하는가? “인간은 자유 롭게 태어났지만 사회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문장을 말이다. 그런데 이처 럼 자연 상태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루소의 입장은 오늘날 교육학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그의 다른 저서 《에밀》에서도 되풀이해 나타난다.

교육이라는 일체의 문명을 거부

이 책의 첫 문장은 “창조자의 손에서 모든 것은 선했지만, 인간의 손안에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자연은 선하고 문명은 악하다’는 전제는 루소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입장이 《에밀》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전제를 토대로 루소는 자연 상태를 이상으로 설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을 모토로 당대의 정치 및 사회체제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루소는 기존 사회의 부조리를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교육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을 타락으로부터 건져내려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체의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말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오래전에 이미 문명이라는 다리를 건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의 교육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에밀》에서 행한 루소의 사고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루소는 《에밀》을 저술하면서 이것이 현실이 아닌 공상임을 전제하고, 허구적으로 창조해낸 가상의 인물인 ‘에밀’을 등장시켜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차원의 교육 이론에 대한 사고 실험을 한다. 이를 기초로 그는 기존 교육과 상반되는 교육 원리를 제시한다.

아이들을 방치하면 안돼

루소가 살던 당시 사회에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서민층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신과 떼어놓기 바빴고, 상류 계층 역시 아이들을 교육기관에 맡겨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라도록 방치했다. 당시에는 애초에 ‘아이’라는 관념조차 없었던 것이다. 《에밀》에서 루소의 가장 혁신적인 관점은 아이를 미완성의 어른이 아닌 그 나름의 고유한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루소는 아이를 오묘한 자연의 질서대로 살게 하려고 아주 세밀한 계획을 세운다. 물론 여기서 루소가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나열할 필요는 없다.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령대별로 구분한 내용을 종합해 볼때 루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철학의 바탕은 바로 ‘자연’이다.

그런데 자연의 원리를 중시하는 교육 철학이 비단 서양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고사성어에 관한 맹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에 성격이 급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씨를 뿌리며 한 해 농사가 잘되기를 소원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밭에 나와 살펴봐도 곡식 싹이 잘 자라는 것 같지 않았다. 안타까운 나머지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돕고 싶어 싹 한 포기를 잡아당겼다. 싹의 키가 확실히 커 보였다. 그러나 날이 밝자마자 밭으로 뛰어가 보니 밭의 싹이 모두 시들거나 말라비틀어져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일화를 들려주고는 이어서 맹자는 순리에 따르는 교육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싹이 잘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 농부는 드물다. 그렇다고 유익함이 없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김을 매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고, 잘 자라도록 돕는다며 싹을 뽑는 것은 유익함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치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스스로 노력하되 서두르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순리를 좇는 자세’를 강조한 맹자의 주장은 좋은 교육이란 자연의 질서 그대로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본 루소의 교육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이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교사는 무엇을 아이에게 가르치기에 앞서 먼저 아이에게 내재돼 있는 자연이라는 성장 질서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원시림으로 가라는 뜻은 아니다

끝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대해 “문명을 버리고 원시의 밀림으로 들어가 살라는 말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처한 ‘잃어버린 자연 상태’를 돌아볼 것을 촉구하는 것, 즉 ‘진정한 인간의 모습과 인간다운 제도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라는 말이라고 해석한 칸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루소의 책 《에밀》은 인간이 교육에서 진정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또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해주는 매우 귀한 고전이다.

◆기억해주세요

루소는 《에밀》을 저술하면서 이 것이 현실이 아닌 공상임을 전제 하고, 허구적으로 창조해낸 가상 의 인물인 ‘에밀’을 등장시켜 이 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차원의 교육 이론에 대한 사고 실 험을 한다.

김홍일 < 서울과학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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