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585호 2018년 3월 12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6)] 소설의 첫 문장들


최인훈 ‘광장’의 첫 문장은?

첫사랑, 첫해, 첫아이, 첫인상, 첫 등교, 첫 월급. 모든 ‘첫’은 설렘과 긴장을 동반한다. 우리는 일상이 지루할 때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획하여 ‘첫’의 의미를 부여하고 크고 작은 실패를 했을 때 ‘첫’을 만드는 노력으로 삶에 기회를 다시 부여하기도 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어떨까? 흡인력 있는 첫 문장들을 읽어 보자.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광장(최인훈)』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은 제목은 광장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바다다. 주인공 명준이 떠난 곳이 바로 바다였다. 광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무거운 주제만큼이나 무거운 바다. 그래서 비늘도 육중하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첫 문장이다. 1970년대 도시 개발의 이면에는 강제 철거로 보금자리를 잃고 밀려난 도시 빈민의 눈물이 있었다. 이 작품은 그들의 비참한 삶과 고통을 빼어난 문장으로 형상화하였다. 신산한 세상에 대한 비판은 화자의 이어진 문장에 담겨 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벌써 30년이 다 돼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은 이렇게 시작한다. 30년이 지나고 이제는 중년의 가장이 된 사내가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치렀던 ‘전쟁’을 회상한다. 지금도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한 것은 그 전쟁이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벅찼기 때문이기도 하고 불완전한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의 첫 문장은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라는 이정비(里程)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무진기행(김승옥)」의 시작이다. 주인공은 무진에서 며칠을 보내고 달라질 게 없을 삶이 기다리는 서울로 돌아가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잡초 속에 튀어나온 이정비는 그 부끄러움을 예고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정비가 잡초 속에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면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삶으로의 전환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콧물이 아니라 누렇고 차진 코여서 훌쩍거려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만 아니라 그때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의 시작이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송도 부근 박적골에서의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그려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품 속에 펼쳐진 굴곡진 현대사와는 별개로 유년기의 어린이라면 당연히 콧물 닦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던 어리숙한 시절에 대한 회상은 정겨운 데가 있다.

<이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것이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이렇게 시작한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소설은 시종 재미있다.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영화화되어 흥행에도 성공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의 서두다. 꽤나 도발적이다. 궁금해서 소설이든 영화든 찾아보게 만드는 문장이다. 도발적인 서두라면 『7년의 밤(정유정)』도 지지 않는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2004년 9월 12일 새벽은 내가 아버지 편에 서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는 경험을 하는 인생은 대체 어떤 인생인가 책장을 들추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진부하지 않아야 한다

단순한 생활글 하나를 쓸 때도 우리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까 고민한다.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고 내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문학 작품이라면 난이도가 더 높아지리라. 매력적인 첫 문장은 진부하지 않고 신선하면서 모티브를 제공하거나 주제를 암시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독자를 사로잡아 작품 속으로 초대한다. 첫 문장이 독자를 끌어당긴다면 그 작품은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리라. 강렬한 첫 문장에 매료되는 것은 독서 과정에서 받는 맛난 선물이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