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남에선 '깃발', 북에선 '기발'로 쓰죠
우리 맞춤법은 형태주의를 기반으로 해 표음주의를 절충했다. 한글 맞춤법은 총칙 제1항에서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지난호에선 ‘한라산-한나산’의 사례를 통해 우리말 적기 방식인 표음주의와 형태주의의 차이를 살펴봤다. 표음주의란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뜻이다. 형태주의란 소리와 상관없이 같은 단어는 언제나 같은 형태로 적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말을 적는 규칙인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일까? 형태주의일까? 한글이 소리글자(표음문자)이니 맞춤법도 표음주의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한글맞춤법은 형태·표음주의 절충

우리 맞춤법은 형태주의를 기반으로 해 표음주의를 절충했다. 한글 맞춤법은 총칙 제1항에서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때 ‘어법에 맞도록 함’이란 단어 기본형을 밝혀 적는다는 뜻이고, 그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그 바탕에서 표준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한 게 현행 맞춤법의 원리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남에선 '깃발', 북에선 '기발'로 쓰죠
표기를 자주 틀리는 말 중 하나인 ‘얽히고설키다’를 통해 구체적인 방식을 알아보자. 이 말을 ‘얽히고?히다’ ‘얼키고설키다’ 식으로 잘못 쓰기도 한다. 두 단어인 줄 알고 띄어 쓰는 경우도 흔하다. 우선 ‘얽히고’는 ‘얽다’를 어원으로 한 피동형(얽히다)임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발음은 [얼키고]로 나지만 적을 때는 원형을 살려 ‘얽히고’로 한 것이다(형태주의). 이에 비해 뒤따르는 ‘설키다’는 어원을 찾을 수 없다. 우리말에 ‘?다’ 또는 ‘설키다’란 게 없으므로 원형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럴 때는 소리글자인 한글의 장점을 살려 발음대로 ‘설키다’로 적기로 한 것이다(표음주의). 또 ‘설키다’는 항상 ‘얽히고’ 뒤에 따라 붙는 말로 쓰이므로 하나의 단어로 봐 붙여 쓰도록 했다.

우리 맞춤법에 비해 북에선 형태주의적 특성을 더욱 강화했다. 북한은 1987년 개정한 ‘조선말규범집’ 맞춤법 총칙에서 ‘뜻을 나타내는 부분은 언제나 같게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일부 소리 나는 대로 적거나 관습을 따르는 것을 허용한다’(원문을 우리 어법에 맞게 바꿈)고 규정했다. 형태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더 명시적으로 밝혔다. 이는 북한에서 두음법칙과 사이시옷을 버린 근거이기도 하다.

형태주의에선 두음법칙·사이시옷 없어

우리 맞춤법 역시 형태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은 같지만 표음주의적 요소를 많이 수용했다. 가령 ‘계집 녀(女)’를 위치에 따라 소리 나는 대로 ‘여자’로, ‘자녀’로 읽고 쓴다. 하지만 형태주의에서는 女는 언제나 ‘녀’일 뿐이다. 그래서 단어 첫머리에 올 때도 ‘녀자, 녀성, 녀인’으로 형태를 바꾸지 않는다. 사이시옷도 마찬가지다. ‘기(旗)’와 ‘발’이 어울리면 ‘깃발’이 되는 게 우리 어법이다. 마찬가지로 합성어 ‘콧등, 냇가, 횃불’ 따위가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다. 뒷말이 된소리로 나기 때문에 표기에 그것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북에선 이를 ‘기발, 코등, 내가, 홰불’ 식으로 쓴다. 형태주의에선 소리에 상관없이 단어 형태를 늘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말글사(史)에서 이 두 관점이 극단적으로 충돌한 게 ‘한글파동’이다. 1954년 정부에서 발표한 ‘한글 간소화안’은 철저한 표음주의를 취했다. 예컨대 ‘꽃이~’를 ‘꼬치~’로, ‘많다’를 ‘만타’로 적는 식이었다.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년) 때부터 이어져온 형태주의 표기에 익숙한 국민 사이에 거센 저항이 일었다. 이 사태는 1년 넘게 끌어오다 이듬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철회 담화로 가라앉았다.